월드컵 특수마저 없다… TV 시장 10년 만에 ‘최악 한파’ 맞나

입력 2022-10-21 04:04

올해 TV 시장이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위축되는 ‘한파’를 맞는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4년에 한 번 있는 ‘월드컵 특수’조차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유럽연합(EU)이 전력 규제를 강화하면서 진입 장벽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전 세계 TV 출하량이 2억200만대로 지난해보다 3.8% 감소할 것이라고 20일 밝혔다.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3분기 출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줄었다. ‘블랙프라이 데이’, 크리스마스가 포진한 4분기에도 지난해보다 3.5%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내년 글로벌 TV 출하량은 2억100만대로 올해보다 0.7%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가 빠르게 침체하면서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버티기 전략도 먹히지 않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의 한 축인 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지갑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달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이 임박했는데도, TV 교체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월드컵은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 소비자에겐 TV 교체의 가장 큰 모멘텀인데, 가스 가격이 오르고 다른 지출이 늘면서 TV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유럽의 TV 출하량은 12.5%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제품인 OLED TV 출하량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북미 시장이 올해 20% 가량 성장한 것과 대비된다. OLED TV의 선두인 LG전자는 올해 OLED TV 출하량이 2.7%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연말 특수를 누릴 수 있는 4분기에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상반기에 쌓여 있는 재고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정도로 TV를 비롯해 가전제품 전반의 판매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아 반등 가능성도 낮다. 재계 관계자는 “재고를 쌓아두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소진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할 경우 대대적 할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분기에 TV에서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TV와 가전 부문에서 원가 상승, 판매 부진 등이 겹치며 약 3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게 그친 것으로 예상한다.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는 2분기에 이어 적자 폭이 확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다 유럽연합(EU)이 기존 4K TV에 적용되던 에너지효율 기준을 8K TV로 확대키로 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8K TV는 해상도가 높고, 크기도 대형이 많기 때문에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한다. 현재 사양대로라면 EU의 새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아직 8K TV 수요는 크지 않지만, 프리미엄 시장을 개척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휘도나 밝기를 낮추는 방식으로 기준을 맞출 수 있지만, 그러면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정부와 협력해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