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너에게 강을 빌려주었더니

입력 2022-10-2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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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없어요.
저는 옷이 없습니다.
춥지도 않아요.
무엇에 홀린 것도 아닙니다.
품안에 언제 살아날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습니다. 붕대인지 얇은 모포인지
아이를 감싸고 있네요.
제가 낳은 것도 같고, 길에서 주운 아이 같기도 합니다.
숨은 붙어 있지만, 물을 게워내고
꽃잎이 떨어집니다.
저는 옷이 없습니다.
군용차에서 긴 손이 다가와 모포와 몸을 감쌀 수건을 주었어요.
길은 검고 희고
꽃나무는 번쩍입니다.
저는 옷도 없고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길이 너무 어두워
어떻게 이 아이를 데려가야 할까요?
군용차들은 검은 길 위에
저는 벗은 나무인 채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집으로 가야 하는 길입니다.

집으로 가야 합니다.
저 피 토하는 아이를 안고 가야만 합 니다.



-정화진 시집 ‘끝없는 폭설 위에 몇 개의 이가 또 빠지다’ 중

이 안타까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일까. 지금 누구에게 옷이 없다고, 집으로 가야 한다고 간절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안고 있는 위태로운 아이는 또 누구일까. 시 제목 ‘강을 빌려주었더니’에 힌트가 있다. 자연으로부터 강을 빌린 인간이 옷도 해진 채, 길도 모르는 채, “저 피 토하는” 지구, 미래, 아이들을 안고 집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