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푸르밀에 공급하던 원유 연 4만t 어쩌나… 정부가 떠안을 판

입력 2022-10-20 04:05 수정 2022-10-20 04:05

유제품 제조기업인 ‘푸르밀’이 돌연 사업종료를 선언하면서 연간 4만t가량의 잉여 원유(原乳)가 발생하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남는 우유는 정부가 예산을 들여 사야 할 형편이다. 푸르밀과 직접공급 계약을 체결한 낙농가들이 입게 될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기도 어렵다.

19일 유업계 등에 따르면 낙농가가 푸르밀에 공급하는 원유량은 일평균 110t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연간 4만150t 정도의 원유가 푸르밀에 공급된 셈이다. 이 원유는 푸르밀이 폐업하게 되면 수요처가 사라진다. 우유 소비가 줄고 있는 상황이라 갑작스레 다른 수요처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사실상 남아도는 원유가 되는 것이다.

과잉공급된 원유는 버려지거나 시중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될 수밖에 없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국내 낙농·유가공 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예산으로 일부 보조해 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209만t) 중 수요 대비 과잉공급된 원유량은 23만t으로 집계됐다. 이를 처리하는 데 소요한 예산은 330억원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푸르밀이 사업을 종료하면 과잉공급량이 더 늘 수밖에 없다. 정부 예산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푸르밀과 직접 계약해 원유를 공급하는 낙농가 20곳의 피해도 예상된다. 유업계 관계자는 “해당 낙농가들은 직격탄을 맞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기도 힘들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고민하고는 있지만 민간 계약에서 발생한 피해여서 정부가 직접 돕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으로는 생산비에 연동하는 우유 가격 결정 체계가 꼽힌다. 국내 우유 소비량은 매년 감소하는데 푸르밀 등 가공업체가 사들이는 원유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민 1인 당 연간 흰우유 소비량은 31.8㎏으로 2001년(36.5㎏)보다 4.7㎏이 줄었다. 반면 원유 도매가격은 지난 6월 기준 전 세계 평균 가격(약 756원/㎏)보다 현재 200원 가까이 비싸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다 보니 국내 가공 유제품 시장은 수입산이 점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소비된 치즈(19만1429t) 중 국산 비중은 23.2%인 4만4409t에 불과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낙농가를 위해서라도 시급히 가격 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