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이면서 관념적인 통찰로 한국문학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이승우가 장편소설 ‘이국에서’를 펴냈다. 2017년 장편소설 ‘사랑의 생애’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소설은 머무르거나 떠날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동체의 불행, 개인의 고통을 그린다.
황선호는 한 광역시의 시장을 모시는 인물이다. 시장의 재선 성공을 앞두고 뇌물 스캔들이 벌어지고, 황선호는 시장에게 한 사람의 ‘담당자’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6개월 동안 종적을 감추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낸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시장은 황선호에게 그 ‘담당자’가 될 것을 제안한다. 황선호는 잠시 사라질 것인지, 캠프를 떠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보보민주공화국’에 도착한 황선호의 눈엔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살던 곳을 떠나 외부인이 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다. 황선호를 그들에게로 이끈 쟝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들 사연이 있어요. 대를 이어 살아온 자기 나라를 그냥 떠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살 수 없어 떠났지만 이 친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다시 돌아가려면 그 곳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야겠지요. 그래서 떠도는 거예요.”
작가는 장소와 상관없이 마주치게 되는 인간 삶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동시에 현실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꿈꾸는 일에 주목한다.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생의 정면을 바라보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승우는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미궁에 대한 추측’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한 일’, 장편소설 ‘그곳이 어디든’ ‘식물들의 사생활’ ‘사랑의 생애’ ‘캉탕’ 등을 냈다.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여러 작품이 독일어와 프랑스어, 일본어로 번역됐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