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에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까지 겹치면서 채권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기업의 돈줄이 줄줄이 막히고 있는데도 금융당국은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레고랜드 ABCP에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이후 이달 3~18일 발행된 회사채는 1조2352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13~28일 회사채 발행액(2조409억원)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한 수준이다. EOD는 채권자가 만기 전에 신용 위험이 커진 채무자에게 상환을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회사채 투자심리를 나타내는 신용 스프레드(회사채 3년물 AA- 등급 금리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를 뺀 수치)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날 기준 신용 스프레드는 1.202% 포인트까지 커졌다. 레고랜드 EOD 직전인 지난달 28일 신용 스프레드는 1.004% 포인트였다. 신용 스프레드가 커졌다는 것은 회사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글로벌 긴축 영향으로 자금 조달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강원도가 신용보강을 한 ABCP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며 투자 심리를 더욱 냉각시켰다. 2020년 GJC는 레고랜드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고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섰다. 하지만 최근 강원도는 보증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GJC에 대한 회생절차를 신청하겠다고 밝혀 시장의 혼란을 키웠다.
설상가상으로 AAA급인 한전채의 금리가 5.6%를 넘어서며 단기물에 대한 수요를 싹쓸이한 것도 회사채 투자 여력을 줄이고 있다. 사실상 국채와 같은 대접을 받는 한전채가 높은 금리와 함께 대량으로 쏟아지자 상대적으로 회사채 수요가 감소한 것이다.
이에 안정적인 등급의 회사채마저 매각되지 않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 17일 JB금융지주는 AA+의 우량한 신용등급과 높은 금리를 내세워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했지만 절반 이상이 미매각됐다. 지난 9월 수요예측을 한 회사채 중 AA등급 이상에서 1건, A등급에서 6건 미매각이 발생했다. 전체 발행금액 대비 미매각금액 비율인 미매각률은 지난 9월 20.5%였다. 전년 같은 기간 미매각률은 0.2%에 불과했다.
이처럼 기업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릴 때까지 금융당국은 선제적 대응은 커녕 불안정한 채권시장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2일 금융시장 합동점검회의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에 이미 조성돼 있는 재원 1조6000억원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을 재개하는 내용의 회사채 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는 시장 안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안펀드 검토 자체가 이미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투입 시점을 밝히는 건 시장의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