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시인의 신작 시집이 그동안 몇 권이나 나왔을까. 1939년 생으로 올해 83세인 정현종의 열한 번째 시집이 나왔다. ‘그림자에 불타다’ 이후 7년 만의 새 시집이다. 정현종은 1965년 ‘현대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니 3년 후면 등단 60주년이 된다.
노시인의 시집을 펼치면 나이가 무색하게 가볍고 단정한 시들이 나타난다. 몇 줄만으로 충분한 시들, 생생하게 감각하고 순수하게 경탄하는 시들, 단번에 읽히면서 통찰을 전하는 시들, 자유롭지만 단정함을 잃지 않은 시들, 우리를 가볍게 들어올려 삶을 조망하게 하는 시들이다.
“잃어버린 시가 얼마나 많으냐”로 시작해 “메모 안 해서 잃어버리고,/ 허공에 날려 보내 잃어버리고,/ 또 올 테니 잃어버리고,”를 줄줄 나열하는 권두시 ‘잃어버린 시’나 “녹아들지 않으면/ 그럴듯하지 않고/ 즐겁지도 않다./ 마음은 특히 그렇다.”로 전개되는 ‘녹아들다’, “산책을 한다.”는 첫 문장을 “이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세상의 시간이 아닌 때를/ 고해가 아닌 데를 걸어가느니.”로 마무리하는 ‘산책’ 같은 시들은 가벼우면서도 충만한 정현종 시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표제시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는 이 시대와 세계의 비극을 매일 접하며 한숨을 토해내고 눈물을 흘리는 시인의 모습을 전해준다. 맨 뒤에 실린 산문 ‘시를 찾아서’는 정현종의 시론인데, “한숨이 이 행성을 덮고/ 눈물이 어디선가 발원하여/ 강을 이루고”의 현실에서 그가 ‘가벼움’에 주목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예술이 우리를 짓누르는 지상의 짐에서 해방한다든지, 삶을 견디게 해준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더 쉽게 말하면 예술을 통해서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고 따라서 마음이 가벼워지며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