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부터 호퍼까지…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입력 2022-10-21 03:05
러스 램지 목사가 최근 펴낸 책에서 언급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지난 2002년 이탈리아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 측이 130년 만에 세척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 골리앗을 응시한다. 왼쪽 어깨엔 자루를 걸치고, 오른손에는 조약돌을 감추고 있다. 전투 직전의 다윗, 벌거벗은 그의 몸은 나약함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5m가 넘는 위압적 크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분노를 응축해 적을 바라보는 다윗의 눈빛에서 대담무쌍함, 자신감, 예견된 승리가 엿보인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가 잘못 쪼개진 거대 대리석 덩어리를 통해 완성한 ‘다비드’는 오늘도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갤러리를 지키고 있다. 골리앗과도 같던 거대도시 로마를 응시한 채.

‘렘브란트는 바람 속에 있다’(두란노)의 저자 러스 램지 목사가 묘사한 다비드상이다.

램지 목사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크라이스트장로교회에서 사역하며 글을 쓴다. 테일러대와 커버넌트신학교에서 공부했고, 2016년 ‘Behold the King of Glory’란 책으로 미국 복음주의기독교출판협회(ECPA) 선정 올해의 신진작가상을 받았다. 이번 책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첫 번째 번역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목회자가 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예술 안내서다. 박진감 넘치는 문체와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으로 선(Goodness)하고 참(Truth)되고 아름다운 것(Beauty)에 평생을 바친 9명의 예술가를 이야기한다.

천부적 재능과 불굴의 노력을 겸비한 미켈란젤로, 사순절(聖)과 사육제(俗)를 오간 부패한 인간 카라바조(1571~1610), 성경 속 장면으로 탁월한 이야기를 그려낸 렘브란트 반 레인(1606~1669), 홀로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은 없으며 누군가의 혁신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 인상파 공동체를 이끈 장 프레데릭 바지유(1841~1870),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를 비우는 모습을 보여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인종 차별에 맞서 성경을 소재로 명화를 그려낸 헨리 오사와 타너(1859~1937),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위대한 재능보다 희생적 선교의 길을 택한 릴리아스 트로터(1853~1928)를 차례로 소개한다.


책의 표지는 1990년 미국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폭풍’이다. 연방수사국(FBI)이 지금도 행방을 쫓고 있는 미국 역사상 가장 거액의 도난 미술품이다.

새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에 배 뒷부분이 치솟고, 뱃머리는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기 직전이다.(막 4:39) 배의 정중앙 줄을 잡고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이가 렘브란트다. 렘브란트는 아직 바람 속에 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