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19일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노 전 실장은 어민들에 대한 정부합동조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11월 4일 청와대 대책회의를 주재했는데, 이 회의에서 조사 중단과 어민 북송이 결정됐다는 의혹이 있다.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검찰 출석도 곧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검사 이준범)는 노 전 실장을 상대로 청와대 대책회의에서의 결정 내용과 배경을 조사했다. 검찰은 어민 나포 이틀 뒤에 열린 이 대책회의에서 판문점을 통한 최초의 북한 주민 추방이 결정됐다고 의심해 왔다. 검찰은 대책회의를 전후로 관계기관의 태도가 바뀐 정황을 세밀히 복원해 왔다. 애초 국정원 보고서에 담겼던 ‘강제수사 필요’ ‘귀순’ 등의 표현은 회의 이후 빠졌고, ‘대공 혐의점은 없음’이라는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어민들을 상대로 진행되던 합동조사가 부자연스럽게 종료된 정황도 파악한 상태다. 합동조사팀장과 국정원 간부의 통화 내용 등 조사 조기 종료 사실을 엿볼 만한 녹취파일을 확보했고, 조사 참여자로부터 “매우 허탈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얻었다. 검찰은 국회 설명자료 문건의 수정·가필 흔적을 발견했고 당시 사건과 관계된 대통령기록물도 압수수색했다. 청와대 ‘일일안보상황보고’ 문건을 토대로 보고의 범위를 살피는 한편 대책회의 이튿날 어민 북송 의사가 담긴 대북통지문이 발송된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노 전 실장은 이날 오후 9시30분쯤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며 언론에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먼저”라는 입장을 전했다.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된 어민 2명에 대한 북송 조치는 정당했다는 취지다. 그는 “남북관계 등 안보조차 정치보복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부월족(自斧 足·제 도끼에 제 발등을 찍히는 격)”이라고도 했다.
주요 피의자들의 검찰 출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정 전 실장, 조사 종료 이전 “중범죄자를 받아서야 되겠느냐”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말한 의혹이 있는 서 전 원장 등이다. 법조계 인사들은 종래에는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대책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결정에 개입했는지에 대한 조사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한다. 다만 검찰은 관계 정황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며, 전직 대통령 조사 문제는 현재 필요성 여부도 판단하지 않았다는 태도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