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9·19 파기 부추기는 北… 대응은 단호하게, 냉정하게

입력 2022-10-20 04:03
19일 오후 경기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 일대에서 열린 한미연합 도하훈련에서 K21 장갑차 등 궤도차량이 연막탄 속에서 부교 도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판단이 옳다. 그가 16일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찾아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지금 일련의 도발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지난 14일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에 무더기 포탄사격을 가해서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더니, 나흘 만인 18일 밤 재차 같은 방식으로 도발했고, 반나절 만인 19일 또 서해에 포탄 100여발을 쐈다. 닷새 동안 완충구역에 퍼부은 포탄은 1000발에 육박한다. 북한이 군사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이제 10건이 됐다. 9·19 합의를 이렇게 헌신짝 여기듯 하지만, 그들의 성명이나 담화는 이 합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먼저 9·19 파기를 선언하라고 부추기듯 도발만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완충구역 포사격의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사격훈련을 거론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던 훈련이다. 하지 않던 것을 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아마도 억지스러운 도발로 9·19 파기를 유도하고 그것을 명분 삼아 더 큰 도발을 감행하려 할 테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대만 공세로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더 복잡한 노림수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의도가 무엇이든 당연히 규탄하고 비난해야 마땅하다. 북한의 행태는 긴장 고조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가장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냉정하게 찾아야 한다.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적을 상대할 때 최선의 방법은 그들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규탄과 비난에 매몰된다면 노림수에 말려들 수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주장 가운데 그럴 위험을 내포한 것들이 보인다. 예컨대 9·19 군사합의 파기론은 북한의 시나리오를 거들어주는 결과가 되기 쉽고, 자체 핵무장론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시나리오를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꼴이 된다. 지금은 섣불리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안보 당국에서 차가운 머리로 내리는 판단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때다.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중국의 시선도 그리 의식하지 않는 듯한 행태를 볼 때, 핵실험을 넘어 예상치 못한 수위로 도발해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각각의 단계에서 대응할 우리의 시나리오를 세밀하게 짜놓아야 한다. 현실로 다가온 북한의 위협에 맞서는 일만큼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힘을 모아야 할 테니, 정치권에서도 이를 위해 미리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