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사랑을 일으키기까지

입력 2022-10-21 03:05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아니, 실은 욕망으로 추동되는 존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당위가 아니라 욕망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욕망할까요.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명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추구되는 가치들이라는 통찰을 줍니다.

‘오늘을 위한 고린도전서’의 저자 권연경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고린도 교회가 겪었던 문제들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자 여러 주석과 자료들을 참고해 그들의 실상을 생생히 그려 내고, 이 작업을 통해 고린도 성도들 안에 감추어진 욕망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났지만, 아직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고린도라는 도시가 추구했던 사회 경제적 존재감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세속적 존재감을 얻어 경쟁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려 했고, 이 때문에 공동체는 분열을 비롯한 문제들로 얼룩져 버린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부지런히 추구하는 욕망도 신자가 아닌 이들의 욕망과 전혀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인간의 실존은 쉽게 변화될 수 없기에, 조금은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고린도전서라는 2000년 전의 편지에 담긴 사도 바울의 메시지에 가만히 귀 기울여 보기를 청합니다.

저자는 우리 믿음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주목합니다. 이것이 우리 욕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시작점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라는 처형법이 구속(救贖)의 방식이 된 것은 당시의 세속적 관점으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고전 1:18~25) 그리고 부름받은 고린도 성도들 또한 당대의 세속적 조건들을 갖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고전 1:26~31) 하나님이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의 관건은 그 어떤 인간적 조건과도 무관한 믿음”(83쪽), 곧 “차별 없는 은혜”(87쪽)에 대한 믿음임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역설합니다. “그런 인간적 가치 속에는 구원의 능력,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83쪽)이 우리에게 날카롭게 꽂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욕망의 변화는 이러한 세속적 가치들의 무력함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와 대조되는 참된 능력, 곧 부활의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변화된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들이 우리의 생활에 자리 잡습니다. 이 책이 초대하는 성찰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깊은 내면을 되돌아보고 변화를 받아, 결국 고린도전서가 힘주어 말하는 서로를 사려 깊게 배려하는 사랑까지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양지영 편집자(IV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