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30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0년을 건강하게 살아주셔서, 내게 간이식에 전념할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40대 초반에 B형간염이 말기 간경화로 악화돼 죽음을 목전에 뒀던 이상준(72)씨와 이승규(73)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최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에서 만나 서로에게 이렇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19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이씨는 1992년 10월 9일 이 교수의 집도로 뇌사자 간을 이식받고 현재까지 별다른 이상 없이 건강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 간이식 최장기 생존자다.
당시만 해도 간이식 수술은 첨단의학의 결정체로 여겨지며 성공 사례가 많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의 성공적인 수술과 회복은 많은 간질환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또 미지의 분야였던 간이식에 거침없는 도전장을 내민 40대 젊은 의사에게는 자신감의 바탕이자 이후 간이식의 역사를 써내려간 원동력이 됐다. 환자와 의사로 만난 두 사람은 30년을 동행하며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장기이식 환자에게 수술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식 후 관리다. 이씨는 스스로도 건강관리에 철저했다. 수술 후 30년간 매일 1만보 이상 걷고 금주·금연 습관을 지켰다. 또 45일마다 병원을 찾아 B형간염 항체 주사를 맞고 3개월마다 건강상태를 점검받고 있다.
이씨는 간이식인들의 경제적 고충과 처우 개선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간이식 후 치료비가 부담돼 치료를 포기하고 건강이 악화된 환자 지원을 위해 한국간이식인협회를 창설하고 2001년 7월 B형간염 항체주사의 건강보험 적용을 이끌어냈다. 또 기금을 모아 나눔행복재단을 설립해 수십명의 환자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이씨의 노력에 이 교수도 힘을 보탰다. 치료비의 보험 적용과 장기이식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로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나눔행복재단에 자신의 책 인세를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이씨는 “스스로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나를 치료해 준 의료진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며 수많은 간이식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씨의 모범적인 건강 관리와 간이식인들을 위한 헌신적 활동은 환자들은 물론 나에게도 큰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됐다”면서 “이씨 수술 후 서른 해가 지난 현재 우리나라 장기이식 수준은 세계 최고 위치에 올랐다. 앞으로 장기 생존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