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의 삶 속에 조용한 위기가 파묻혀 있다.” 바로 돌봄 문제다.
중년의 인구에게 돌봄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돈을 벌면서,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키우고, 늙고 아픈 부모를 돌봐야 한다. 영국의 경우, 50대와 60대 여성 4명 중 1명이 돌봄제공자 역할을 맡고 있다. 돌봄은 중년만의 문제도 아니다. 영국 성인 인구 8명 중 1명이 노인 또는 장기질환자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18세 미만 아동 중 약 18만명이 돌봄제공자다.
그런데 지금 돌봄은 어떤가.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돌봄을 제공하지 않고, 사람들은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가족은 돌봄을 제공하기에는 허약해져 있습니다.”
돌봄의 위기는 21세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수명 연장과 노령화라는 인구학적 변화가 돌봄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제 활동 증가와 대가족 제도의 쇠퇴로 돌봄 자원은 감소했다. “2차 대전 이후 거대한 여성 노동력이 공장으로, 소매점으로,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20세기의 가정 내 돌봄에서 자원이 대거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몇십 년 뒤, 이번에는 아내와 엄마들이 바깥일을 하게 되면서 두 번째 썰물이 닥쳤다.”
여기에 복지국가의 퇴행이 더해졌다. 20세기 후반 복지국가 모델이 만들어져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으나, 신자유주의와 민영화의 물결 속에서 복지는 축소되고 있다. 돌봄은 다시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졌고, “계속 종종거려야만” 간신히 받을 수 있는 불충분한 지원이 됐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매들린 번팅은 ‘사랑의 노동’에서 돌봄의 위기를 “극적인 사회변화에 직면한 문화의 위기이자 정치의 위기이며 윤리의 위기”로 규정하고 “오래도록 돌봄의 가치와 중요성을 폄하해온 뿌리 깊은 편견이 21세기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돌봄에 대한 폄하와 편견을 바로잡는 것에서 돌봄의 문화와 윤리, 정치가 새로 세워질 수 있다고 본다. 돌봄은 겹겹의 가림막에 둘러쌓인 채 개인의 책임으로, 여성의 일로, 사소한 노동으로, 사회적 비용으로 여겨져 왔다. 저자는 이 가림막들을 열어젖히고 돌봄 현장들 속으로 들어간다. 장애아동 부모를 돕는 시민단체, 대학병원 중환자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일반의 진료실, 요양원, 호스피스, 방문간병 등을 돌아보고 돌봄의 현실, 돌봄노동의 강도와 처우, 돌봄에 필요한 복잡하고 섬세한 기술 등을 드러낸다.
“장애인생활수당 신청서는 50쪽이나 됩니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샘은 오전 7시30분에 일을 시작해서 45분간의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시40분까지 한 번도 앉지 못했다.”
“(최소한의 근무시간이나 임금을 보장하지 않고 일한 시간만큼만 시급을 주는) 제로아워 계약 하에 장거리를 다니면서 일주일에도 여러 사람을 돌봐야 하는 방문 간병인에게 모든 것을 부담시켜서 지속 가능하고 환자를 잘 보살피며 통합적인 의료 및 사회적 돌봄 시스템을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책은 영국의 돌봄 현실을 비판하는 한편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며 돌봄의 본질을 탐구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돌봄의 상당 부분이 지속성 유지에 투자되는데, 모두가 변화에 집착하는 시대에 지속성은 간과되거나 무시된다.”
“의사는 약으로 고통과 우울을 치료할 수 있지만, 실존적 고통은 남습니다…. 우리는 환자 앞에 있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있어주는 것은 이제 사라져가는 기술입니다.”
책은 “돌봄의 관계에 흐르고 있는 시간, 관심, 존중, 신뢰, 존엄, 호혜, 연대”를 공들여 묘사하고 이 낡고 텅 비어 보이던 단어들에 다시 활기와 혁명성을 부여한다. ‘사랑의 노동’이라는 멋진 이름이야말로 돌봄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새로 구성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복지국가 실패나 젠더 불균형, 무보수·비공식 노동 등의 관점에서 다뤄온 돌봄의 위기를 문화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돌파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돌봄은 취약성, 의존성, 고통을 다룬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될 경험을 구성한다. 누구나 자신의 문화에 돌봄의 전통을 육성해야 할 이유가 있다. 모두의 삶이 그것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