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종이 복음을 접어 세계에 펼치다

입력 2022-10-22 03:00
홍성애 선교사가 최근 경기도 가평 ‘생명의 빛 예수마을’에서 열린 종이접기 전시회에서 복음부채를 들고 앉아 있다. 가평=신석현 포토그래퍼

가로 세로 각 15㎝, 두께 0.15㎜, 무게 1.76g. 색종이 한 장의 크기다. 한 뼘도 안 되는 이 작은 종이로 무얼 할 수 있을까. 홍성애(68) 선교사는 이 종이로 우주보다 광대한 하나님의 복음을 접었다. 그 종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아마존강 6299㎞ 유역에 사는 브라질 인디오 어린이와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이후 원주민 5개 종족의 수십 개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고 학교가 만들어졌다.

달란트 ‘찬양과 종이접기’

홍 선교사 부부가 2020년 은퇴 후 머물고 있는 경기도 가평 ‘생명의 빛 예수마을’(하룡 목사·이하 예수마을)을 최근 찾았다. 홍 선교사가 그동안 만든 주요 작품들이 ‘복음적 종이접기’라는 제목으로 예수마을 카페 한켠에 전시돼 있었다. 그는 “전도와 어린이 사역에 관심 있는 분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며 색종이로 복음을 전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로 사는 삶을 표현한 작품(맨 위)과 생명의 빛 예수마을 예배당 배경에 천사와 십자가를 표현한 작품. 맨 아래 사진은 아마존 원주민들의 요청으로 만든 펭귄과 눈 모양 종이접기. 가평=신석현 포토그래퍼

홍 선교사는 1984년 남편 박동실(73) 선교사와 함께 브라질로 떠났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선교에 관심이 있었다. 근데 나는 더위를 못 견디고 남편은 추위를 못 견뎠다. 남편의 하나님이 더 셌는지, 그 더운 나라 브라질로 가게 됐다”며 웃었다. 13년 동안 브라질 현지에 적응하며 교포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다 97년 원주민 인디오들이 사는 아마존으로 갔다.

아마존 지역은 전기도 수도도 집기도 제대로 없었다. 복음을 어떻게 전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무력감에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났다. ‘하나님,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그때 하나님이 달란트를 찾아보란 마음을 주었다. 마침내 홍 선교사는 ‘하나님, 종이접기와 찬송을 할 수 있어요. 이걸로 복음을 전할게요’라고 기도했다.

남편이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로 말씀을 전하면 홍 선교사는 찬양으로 설교를 요약하거나 종이로 메시지를 알아듣기 쉽게 반복했다. 그는 알록달록한 부채를 집었다. “제가 만든 ‘복음부채’에요. 노랑 검정 빨강 하양 초록 5가지 부챗살 색종이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노랑은 하늘에 계신 거룩한 하나님, 검정은 인간의 죄, 빨강은 그리스도의 보혈, 하양은 구원, 초록은 성장을 각각 상징해요.”

색종이에 담은 복음과 창조

기독교 복음을 5가지 색종이로 전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들었는데 죄에 물든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냈어요.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인간은 구원을 받게 됐어요. 구원받은 인간인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됐고 그 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사명을 가져요.”

약 30초. 홍 선교사가 각 색깔의 상징을 설명하고 복음을 풀이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이 복음부채로 수많은 아이에게 복음을 전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복음부채에 대한 설명을 잘 이해하더라고요. 좋았어요. 그곳 아이들은 12~15세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요.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지요. 그 아이들에게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가를 알려줄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홍 선교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란 말씀이 담긴 창세기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창조의 여섯 날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려면 날별로 하나씩 액자가 6개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마존에 그런 액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부터 종이로 액자를 접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천지창조에 대해 2년 가까이 그림을 구상하고 석 달가량 액자를 위해 기도했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나 종이 한 장을 책상 앞에 두고 기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머릿속에 종이 접는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 이미지를 따라 손으로 접었더니 액자가 만들어졌어요. 할렐루야. 얼마나 기뻤는지….” 홍 선교사는 천지창조를 표현한 6개 액자를 가리켰다.

종이접기 책자 전 세계에 배포

종이로 만든 액자 안에는 빛과 어둠, 하늘, 땅과 바다, 해와 달, 새와 물고기, 짐승과 사람이 들어 있었다. “여섯째 날 액자에는 사람을 접은 뒤에 어린이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오려 붙여 선물로 줬어요. ‘넌 하나님 형상을 닮은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면서요.” 그는 당시 장면들이 떠오른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홍 선교사는 천지창조 액자를 완성한 뒤 무심코 이런 기도를 했다.

“하나님 천지창조 액자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브라질의 모든 어린이를 저에게 주십시오.” 색종이로 브라질 전체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엄청난 기도였다. “사실 이 기도를 하고도 이 기도를 한 자신에게 깜짝 놀라 제 입을 막았어요(웃음). 한국에서 온 제가 아마존 인디오 마을을 순회하며 복음 전하고 있는데 어떻게 브라질 어린이들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겠어요?”

그런데 얼마 뒤 브라질어린이전도협회(이하 전도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색종이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강의해주세요.” 간접적으로 브라질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색종이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들은 교사들은 홍 선교사에게 책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교수들의 파업으로 여유 시간이 생긴 큰아들의 도움을 받아 책을 썼다.

첫 번째 책은 ‘종이접기와 찬양’, 두 번째 책은 ‘종이접기와 창조’, 세 번째 책은 ‘종이접기와 성경’이었다. “교사 교육 3개월 과정에 이 내용이 포함됐어요. 첫 책은 ‘먹보다도 더 검은’ 같은 찬송은 복음부채에 맞춤한 노래지요.” 홍 선교사는 포르투갈어로 이 찬양을 부른 뒤 한국어로 다시 이 노래를 불렀다. 매우 고운 소프라노 같았다. “내 목소리를 따라 노래하던 아이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홍 선교사가 브라질에서 출간한 종이접기 책들(위). 아마존 지역 어린이들이 십자가에 색종이 장식을 하고 있다. 홍성애 선교사 제공

전도협회 강연 후 홍 선교사의 기도는 다시 커졌다. ‘하나님, 브라질 어린이들에게 색종이로 복음을 전할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전할 방법도 찾게 해주세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은 없는 것(막 9:23)인가.

그 후 세 권의 책은 포르투갈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아랍어로 번역돼 남미 아프리카 중동으로 퍼져나갔다. 홍 선교사는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제6차 한인세계선교대회에서 전 세계 선교사들 앞에서 색종이로 복음을 전한 일을 나누기도 했다. “사실 브라질에서 4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어요. 풍토병에 걸려서 3시간 고열에 시달리고 3시간 땀 흘리면서도 컨디션이 괜찮아지면 복음 전할 색종이를 접었어요. 두 아들이 저를 막 말리기도 했지요. 그래도 그렇게 할 힘을 주시더라고요.”

홍 선교사는 이제 은퇴했지만 색종이 복음 사역을 계속 이어가길 원한다. “지금도 제 머리와 마음에는 온통 복음적 종이접기로 꽉 차 있어요. 색종이로 복음을 전할 팀을 찾아서 교육하려고 해요. 이 사역은 종이 한 장에 하나님 나라를 담는 거예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가능하고 특히 한국에 와 있는 다문화 이주민을 위한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늘 하고 싶은 말이에요.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에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두 아들 은철(40)과 신철(38)씨는 현지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브라질 여성과 결혼해 홍 선교사 부부의 사역을 함께하고 있다.

가평=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