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야기한 전 세계적 혼란이 진정되면서 해외여행도 순차적으로 정상화되고 있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항공 여객 이용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521.3% 급증한 212만6456명으로 집계됐다. 항공 여객 이용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20년 2월 이후 30개월 만이다. 입출국자 모두 골고루 증가한 점이 특징이다. 한 달에 700만명 이상 오가던 코로나 이전에는 못 미치지만 예전 수준의 회복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 여객 회복세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지난 3월만 해도 41만4684명에 그쳤던 항공 여행 이용자 수는 5개월 만에 5배 이상 규모로 급증했다.
해외여행이 늘면서 환율과 환전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만큼 달러나 유로화를 쓰는 국가로 출국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환전 수수료가 조금이라도 적은 게 이득이다. 하지만 개인마다 원화를 얼마나 달러로 바꾸는 게 나을지 정답이 없기 때문에 고민이 커진다. 환율이 그대로라도 바꿀 때는 공시된 환율보다 더 비싼 값에 달러를 바꿀 수 있다. 반면 귀국 후 원화로 바꿀 때는 공시된 환율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달러를 되팔아야 한다. 금액 규모가 크면 클수록 이 간극도 커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도한 환전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외환, 왜 사고팔 때 금액 차이가 날까
외환을 환전할 때 사고파는 가격이 차이가 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단 인건비와 같은 고정비가 사고팔 때 반영된다. 여기에 ‘조달 비용(스프레드)’이 추가된다. 조달 비용이란 통화를 현찰로 조달할 때 은행이 부담하는 일종의 수수료를 말한다. 두 가지 요소가 환전 수수료 형태로 반영되기 때문에 살 때와 팔 때 가격은 소비자가 접하는 환율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환전 수수료는 유동성이 적은 통화일수록 더 크다. 이유는 조달 비용 차이 때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달러처럼 활발하게 거래되는 외환의 경우 조달 비용이 적게 들지만 환전 규모가 적은 국가의 통화는 조달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며 “환전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는 환율 우대 등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사고팔 때 환전 수수료 부담을 아끼겠다고 신용카드를 쓸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부대비용(해외결제 수수료)이 들어간다. 수수료에는 비자나 마스터와 같은 국제 브랜드 이용·환전 수수료와 국내 카드사가 챙기는 수수료 등이 포함된다. 카드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해외 결제 수수료는 일반적으로 결제한 금액의 1.0~2.5% 정도 수준이다. 해외에서 신용카드로 100달러를 결제한다고 하면 실제로는 101~102.5달러가 청구되는 식이다.
해외여행 소비에 독 된 고환율
각종 수수료율을 감안해 환전액과 신용카드 사용액을 적절히 분배하는 게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소비자에게는 가장 유리하다. 다만 환율 자체가 워낙 오르다 보니 해외여행 소비가 덩달아 오르는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면세점 매출을 통해서도 읽힌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해외 여객 이용자 수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지난 3월 기준 내·외국인 대상 면세점 매출액은 1조66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해외 여객 이용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이 이어졌지만 면세점 매출액은 증가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다. 여름 성수기인 지난 8월의 경우 해외 여객 이용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섰지만 면세점 매출액 합계는 1조5701억원으로 되레 3월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추세대로라면 해외여행과 달리 면세점 경기는 반등이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8월 누적 매출액(11조3686억원)을 감안했을 때 연말이 돼도 지난해 수준(17조8334억원)과 비슷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면세점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고환율 영향이 크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오락가락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유로화 역시 강세다. 지난 18일 기준 원·유로 환율은 1413.83원으로 달러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나마 원·엔화 환율은 같은 날 기준 100엔당 964.10원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일본 여행 빗장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소비 영향을 예단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의 면세점 활성화 대책이 힘을 쓸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기획재정부는 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지난달부터 입국 시 면세액을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했다. 면세로 구입 가능한 주류나 담배류 규제도 완화했다. 관세청은 입국장에서 면세품을 인도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하기로 했지만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에는 부족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최근 해외를 다녀온 직장인 A씨는 “달러 자체가 너무 올라서 면세품에 손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