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45년 사업종료, 오너 경영 실패·안일이 낳은 비극

입력 2022-10-19 04:08
18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식품기업 푸르밀은 지난 17일 전직원 정리해고를 통지하며 다음달 30일 사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45년 동안 사업을 이어오던 중견기업 ‘푸르밀’이 돌연 사업종료를 선언한 배경에 ‘오너 경영의 실패’가 자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면서 잇따른 경영 실패와 도덕적 해이가 낳은 비극이라는 분석이다. 갑작스레 정리해고 통지를 받은 정직원 약 350명을 포함해 협력업체 직원 50명, 배송기사 100명, 500여개 대리점의 점주는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2021년도 푸르밀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푸르밀의 자본총계는 143억원에 불과해 완전 자본잠식을 앞둔 수준이었다. 재무제표만 보면 사업을 이어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푸르밀 측은 업황 부진을 사업 실패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계에선 핵심 원인을 경영 실패, 특히 오너 경영의 실패로 지목한다. 푸르밀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전문경영인 남우식 전 대표 체제에서 꾸준히 영업이익을 냈다. 2018년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이사 체제로 바뀌면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푸르밀은 2018년 매출 2301억원을 올렸으나 영업손실 15억원을 거두며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손실은 2019년 89억원, 2020년 113억원, 지난해 124억원으로 덩치를 키웠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말에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질 것으로 추정된다.


신 대표가 오너 경영을 시작하면서 푸르밀에선 적극적 투자도,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도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이후 시장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기민한 대응이 필요해졌다. 다른 식품기업이 다각도로 투자를 하고 새로운 성장 먹거리를 찾고 있을 때 푸르밀은 안주한 게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투자 부진과 안일한 경영은 매각 불발에서도 드러난다. 푸르밀은 LG생활건강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LG생활건강은 푸르밀의 콜드체인을 경쟁력으로 보고 인수를 시도했으나 설비 노후 등을 이유로 손을 뗐다.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푸르밀 임직원은 충격에 빠졌다. 김성곤 노조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신 대표가 취임한 이후 회사는 위기에 빠졌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으로 어떤 조언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무능력한 경영을 해와 적자구조로 탈바꿈한 것”이라며 “오너의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직원 해고에 비통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푸르밀 제품을 취급하는 대리점주들도 날벼락을 맞게 됐다. 대리점주 사이에서 공식적 사업종료 공문조차 받지 못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부에선 실질적으로 기업 청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한다. 수백억원대 법인세를 아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푸르밀 법인을 청산하면 그동안 영업손실에 따른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임직원을 정리해고하면서 법인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푸르밀과 자체브랜드(PB) 상품 공급계약을 맺은 유통업계로 불똥이 튀었다. PB 계약은 보통 1년 단위로 맺는데, 전날 갑자기 이메일 공문으로 사업종료 계획을 통보받았다. 현재 이마트, 홈플러스, GS리테일, BGF리테일 등은 푸르밀로부터 PB 제품을 받고 있다.

문수정 정신영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