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7일 입대 결정을 발표했다. 안 가면 안 간다고, 가면 간다고 어차피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터였다. 이 소식에 BTS와 관련한 정치권의 다소 어색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지난 5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퇴임 닷새를 앞두고 병역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생뚱맞다는 비판에도 그가 “다음 정권에 이 사안을 넘기는 건 비겁하다고 판단했다”며 목소리를 냈던 배경엔 장관 재임 시절 순방 등을 통해 BTS의 영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BTS와 함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한국관을 방문했다. 당시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을 찾은 BTS가 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소화한 일정 중 하나였다. 실제로 문재인정부는 집권 내내 BTS와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을 여러 차례 맞추며 BTS 후광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윤석열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BTS 보유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이 소프트파워 강국 반열에 오르는 데 기여한 이들에게 덥석 손을 내밀었다. 지난 7월 BTS를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하는 자리에서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기획전략관이 기념촬영을 위해 멤버 뷔의 손을 억지로 번쩍 들어 올렸다가 온갖 비난을 받기도 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BTS는 지난 주말 부산에서 콘서트까지 열었다. 이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정치권은 그럴 때마다 ‘병역특례’를 위한 법 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정작 20대 남성과 군대 갈 나이의 아들을 둔 40~50대 여성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은 이 문제를 여론에 떠넘기며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사실 ‘BTS 병역특례법’이라는 호칭 때문에 ‘군 면제’처럼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대체복무’다. 훈련병이 받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현역병으로 복무하는 대신 2년10개월 동안 예술체육 분야에 종사하는 형식이다. 일종의 성과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도의 진짜 취지는 다르다.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청년들이 대체복무를 통해 다가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대체복무를 하게 된 줄 알지만, 조성진은 2009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우승으로 대체복무 기회를 얻었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2014년 4주간 훈련을 받은 뒤 대체복무 기간 중 성취한 결과다.
이미 우리 병역법은 예술체육요원뿐만 아니라 사회복무요원,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해 다양한 예외를 두고 있다. 현행법상 다른 분야는 다 해주면서 대중문화예술 분야만 안 해주는 건 그래서 명백한 차별이다. 하지만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됐던 과거와 병역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한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면 대체복무 제도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 논의는 대체복무 전반에 대한 점검부터 모병제로의 전환까지 따져보며 제대로 풀어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정치권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BTS는 입대를 결정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놓는 정치권 반응 역시 기대 이하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의 애국심 운운하며 “긴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TS 병역특례 무산이 윤석열정부 탓이라며 책임 공방의 포문을 열었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니다. BTS가 군대에 가기로 했으니 병역법 개정 논의도 끝내버리면 될까? 제2, 제3의 BTS가 나올 때마다 이들을 병역특례를 앞세워 볼모 삼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국회에 주어진 입법 과제를 충실히 풀기 바란다.
김나래 온라인뉴스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