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베풀고 함께하고… 공유 냉장고로 ‘쓰리고’ 문화 만들어간다

입력 2022-10-19 03:02
김학규 강릉 에덴의동산교회 목사가 18일 공유 냉장고에 보관된 식품을 진열하고 있다. 에덴의동산교회 제공

김학규(55) 강릉 에덴의동산교회 목사의 하루 사역은 냉장고를 여는 것으로 시작해 닫는 것으로 끝난다. 사택 주방에 있는 집 안 냉장고가 아니다. 교회 앞 길가에 놓인 이웃을 위한 2개의 냉장고다. 냉장고엔 각각 이름도 붙어 있다. ‘우리 동네 공유 냉장고’와 ‘사랑의 음료 냉장고’다.

김 목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군산 성민교회(김호연 목사)가 지역주민을 위한 나눔활동의 일환으로 공유 냉장고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동네에 꼭 필요한 사역이란 생각이 들어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냉장고가 동네에 ‘쓰리고(나누고 베풀고 함께하고)’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주민들에게 처음 선보인 냉장고는 4개월여 만에 동네 명물이 됐다. 김 목사가 보여준 냉장고 사진에는 칼국수 라면 컵밥 등 끼니를 챙길 수 있는 간편조리 식품은 물론 각종 빵 과일 반찬 양파 고구마까지 진열돼 있어 작은 편의점 하나를 옮겨놓은 듯했다. 동네 주민이라면 누구나 음식물 1개를 가져갈 수 있고 누구나 주민을 위해 넣을 수도 있다.

음료 냉장고엔 각종 음료와 물이 마련돼 있다. 우편배달부 환경미화원 택배기사 등 주민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공간이다. 2개의 냉장고 옆엔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 하나가 더 있다. 상자엔 ‘365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쌀독’이란 이름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김 목사는 “지역 내 소외계층을 위한 쌀 나눔 상자인데 부담 없이 가져갈 수 있도록 1㎏씩 나눠 담아 뒀다”고 했다.

교회 입구에 마련된 2개의 공유 냉장고와 사랑의 쌀독. 주민 누구나 나눔을 주고받을 수 있다. 에덴의동산교회 제공

강릉에 교회를 개척한 지 올해로 13년 차인 김 목사에겐 늘 시선에서 놓지 않았던 계층이 있다. 바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웃들이다. 교회 개척지를 놓고 준비할 때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밀집한 동네’가 우선순위였다. 강릉에 둥지를 튼 직후부터 지역 내 어르신, 소외계층을 위한 급식 봉사와 초청잔치를 한 것도, 코로나19로 위기를 겪는 주민들을 위해 ‘사랑의 도시락’ ‘사랑의 붕어빵’을 만들어 전한 것도 모두 사역의 연장선이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식품은 같은 건물에서 사모가 운영하는 식당인 ‘행복한식탁’ 수익 일부, 누리보듬선교회(오순종 목사)의 기부로 채워진다. 성도 15명의 작은 공동체에서 지속해 나가기에 어려움은 없을까. 김 목사는 “어렵다고 멈출 사역이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좋은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있어 아직까진 냉장고가 빈 적이 없다”며 “빵이나 쿠키를 가져가는 동네 아이들이 가끔 초코파이나 사탕을 살며시 두고 가기도 한다”며 웃었다. 냉장고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동네 떡집에선 떡을 내놓기도 하고, 다른 동네 주민이 김 목사를 찾아와 “쌀독이 더 채워졌으면 좋겠다”며 헌금을 하기도 한다.

김 목사의 따뜻한 시선은 또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몇 해 전 ‘홀몸노인 고독사 문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뒤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사는 공동체 마을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을 전하는 게 소명이니까요. 그 모습이 조금씩 물들면 교회 이름처럼 ‘에덴동산’이 되지 않겠어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