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어느 멋진 가을날, 홈페이지 독후감상문

입력 2022-10-19 04:03

‘청와대에서 북악산까지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북악산(서울성곽)으로 이어지는 역사공간이 청와대로 인해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청와대 경내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개방하면 청와대 일대와 북악산 전면 개방 효과가 생겨 국민들의 휴식, 산책, 역사탐방 등이 가능해집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이다. 새로 생긴 오픈청와대 홈페이지는 흥미진진하다. 한번 들어갔다가 쉽게 나오지 못했다. 정작 청와대 탐방보다 구석구석 홈페이지 탐방이 더 볼 게 많은 성싶다.

우리말 ‘돌려드린다’는 말은 상대에게 받거나 빌리거나 빼앗은 것을 도로 준다는 뜻이다. ‘명징하게 직조하다’와 같이 어려운 말이 아니고, ‘심심한 사과’처럼 괜스레 혼란을 주는 단어도 아니다. 그런데 왜 잘못 썼을까? 우리 국민들이 역대 권력자들에게 이 땅을 빌려주거나 빼앗은 적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친절하게도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청와대 역사를 소개하고 있어 읽어 보았다.

‘청와대 부근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 고려의 이궁이 이곳에 들어서면서부터’란다. 맞다. 고려는 수도 개경 외에도 평양에 서경을, 지금의 서울(당시에는 양주)에 남경을 두었다. 이때 남경에 궁궐을 지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시 홈페이지로 돌아오면, ‘경복궁이 완성된 뒤 세종 8년인 1426년,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경복궁 후원이 조성되었다’고 씌어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이 중건될 때 경복궁 후원에 경무대도 만들어졌다고.

여기서 질문 하나. 그렇다면 청와대와 인근 북악산이 일반 백성들의 땅인 때는 언제였나? 고려 남경 이전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고려와 조선 사이 어떤 시점일까? 내 짧은 역사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곳은 천 년 가까이 최고 권력자들의 땅이었다. 빌려주거나 빼앗긴 국민이 없으므로 돌려받을 수가 없는데, 어쨌든 국민들은 이곳을 덥석 품에 돌려받았다.

‘광화문과 경복궁, 그리고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역사공간이 청와대로 인해 단절되어 있다’는 두 번째 문장의 오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공간이 청와대로 인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역시 엄연한 역사공간으로 존속하고 있던 거다. 근대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주 무대였던 청와대가 역사공간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오히려 단절된 것은 청와대의 역사여서, 하루아침에 관광지가 되고 패션쇼장이 돼버렸다. 앞으로 베르사유궁전 같은 고품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고 하니, 베르사유궁전-경복궁-광화문을 잇는 연결고리가 무엇일까 혼자 생각하느라 괜히 밤을 새웠다. 앞에 쓴 인용문 뒤에 붙은 ‘생태계가 잘 보전된 등산로를 세계적인 등산코스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요즘말로 ‘신박’하고.

한남동 관저 공사를 5개월이나 하고도 왜 아직 이사하지 않느냐고 말들이 많지만, 나는 솔직히 이런 재촉에는 공감하지 않겠다. 이삿날을 함부로 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염집도 아니고. 고려와 조선이 천도하고 궁궐을 지을 때도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의 영향이 컸고, 경희궁과 인경궁 창건도 지관과 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다. 태종은 형제의 난을 일으킨 경복궁이 싫어 창덕궁으로 갔고, 광해군도 단종과 연산군이 폐위된 창덕궁이 찜찜해 새 궁전을 지었으니, 따져보면 청와대를 두고 새로운 관저로 가는 것도 다 전통을 따르는 거라 생각하면 속이 편하다.

다만 오픈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보고 느낀 점 한마디만 덧붙이겠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인데, 깊이 있는 콘텐츠는 관두고라도 문장과 맞춤법과 띄어쓰기 정도는 올바로 챙길 수 있지 않은가? 직업병이 발동하는 바람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월계수, 태극무늬가 형상화되어 있는 아름다운 무늬로 장식된 연회장을 방문하여 포토존에서 멋진 인생샷’을 남기는 것은 다음 기회에.

최현주(카라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