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환대에 대하여

입력 2022-10-19 04:07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기 때문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일부분을 자르고 또 한 글자 바꾼 문장이 바로 광화문 글판에 올라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해 준 세 줄 문장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시의 후반부에 있는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란 문장에 주목한다. 환대. 참 좋은 말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을까.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반가움과 고마움이 나오고 또 기쁨이 생긴다.

만남이 어떤 만남이냐가 중요하다. 서로 좋게 대하는 만남, 웃으며 밝은 마음으로 만나는 만남이어야 한다. 적대하거나 거부하거나 싫어하는 만남일 때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구상 시인 같은 분은 당신의 시 ‘꽃자리’에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문장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다.

환대. 어찌했든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는 서로가 환대해야 할 일이다. 우선은 내가 먼저 좋은 낯으로 밝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할 일이다. 우리 말에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란 말이 있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서 나쁠 일 없고 부드럽게 말해서 욕먹을 일 없고 웃는 얼굴일 때 상대방이 찡그릴 일 없다.

공자님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게 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말씀하셨다. 더러는 학교 같은 곳에 나가 강연할 때가 있다. 주로 중학교나 고등학교인데 강연장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해주면 대번에 기분이 좋아져 마음이 팽팽해지는 건 물론이고 맥없이 풀렸던 다리에 힘이 솟는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을 한자리에 꼿꼿이 서서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된다.

스스로 놀라는 일이다. 이야말로 젊은 청춘들이 보내준 환대의 힘 덕분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서 환대의 의미를 배운다. 그래서 ‘방문객’이란 시 전반부에만 눈길을 주다가 어느 순간부터 후반부를 읽게 됐고 거기에 숨어 있던 ‘환대’란 말에 마음이 머물게 된 것이다.

환대의 마음은 특히 다중의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연예인이나 교육자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 같이 강연을 자주 하고 시를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나서서 친절하고 부드럽고 밝게 사람을 대해주면 세상이 다 밝아질 것이다.

오래전 공연장에서 보았던 일이다. 유명 가수 한 사람이 와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약속한 만큼만 노래 부르고는 앙코르를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뒤이어 학생들 몇이 몰려가 사인을 부탁했는데 손사래를 치면서 사라졌다. 그러자 관중석 맨 앞자리에 있던 사람들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다. ‘저 인간 다시는 부르지 마!’란 말이었다.

정말로 자기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볼 일이요, 다른 사람 기쁘고 즐겁게 하면서 사는 것도 좋은 삶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할 때 나도 조금씩 기쁘고 즐거워질 것이고 희망적인 삶이 될 것이고 또 건강해지기도 할 것이다.

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