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해 피격 공무원 마지막 통화… “유언 아닌 일상 대화”

입력 2022-10-18 04:04
국회 법사위원회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모습. 검찰은 최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관련 유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자진 월북’ 발표 경위와 배경을 조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고(故) 이대준씨가 실종 직전 아내의 부탁으로 대입 준비로 고민하는 아들과 통화를 나눴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17일 파악됐다.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한 해양경찰청 브리핑에서 해당 통화는 이씨가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며 가족과 유언처럼 한 통화로 소개됐다. 그런데 당시 통화가 아내 요청에 따라 평상시처럼 부자간 이뤄진 통화였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최근 유족을 비공개로 다시 불러 이씨의 마지막 통화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과 전후 맥락을 청취했다. 그동안 월북 조작 관련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은 당초 이씨에게 ‘월북 동기’가 없었다는 증거 관계를 보강하는 단계에 들어선 모습이다.

이씨는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되기 직전인 2020년 9월 20일 밤 아내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다 당시 아들의 입시 준비에 대한 고민을 듣고 “내가 직접 통화를 해보겠다”고 한 뒤 전화를 걸었다. 당시 아들은 바로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씨는 아내에게 통화가 안 됐다며 재차 연락했다고 한다. 이후 아들의 전화를 받아 통화를 나눈 이씨는 아내에게 “잘 얘기했다”고 회신했다. 그런 뒤 이씨는 9월 21일 새벽 1시58분쯤 어업지도선에서 근무하다 실종됐고, 다음 날 밤 10시쯤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습돼 숨졌다.

유족은 당시 이씨 통화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일상적 대화였음에도 마치 유언처럼 호도됐다는 취지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발표한 2020년 9월 29일 2차 중간수사 브리핑에서 이씨가 실종 직전 아들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가정 상황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검찰이 지난 6월 첫 고발인 조사에 이어 4개월여 만에 재차 유족을 참고인으로 소환한 것은 이씨의 ‘월북 논란’을 둘러싼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는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자진 월북’ 발표가 사실관계 확인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윗선 방침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면밀히 따지는 과정에서 전제조건인 ‘월북 가능성’을 재차 살펴보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수사팀은 이씨의 채무 상환 노력과 그가 당직 근무를 자처했던 점, 아내 및 아들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가장’인 그가 스스로 월북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의 중간 감사 결과에서도 지난 정부가 이씨의 ‘월북 판단’ 근거로 제시하던 사안들은 명확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씨가 사망한 이튿날인 9월 23일 오후 3시쯤 해경이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하달받은 언론대응 지침에 ‘지방에서 (가정불화) 혼자 거주’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해경조차 이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 비치된 구명조끼 수량을 ‘이상 없음’이라고 조사했지만, 국방부에선 돌연 “혼자 구명조끼를 착용”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김홍희 전 해경청장은 월북 판단을 단정할 수 없다는 실무진 의견 제시에도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 된다. 월북이 맞는다”는 취지로 말하며 진행시켰던 것으로도 조사됐다. 이씨가 북측 해역으로 흘러갔다는 근거로 제시된 표류예측시스템도 정작 담당자는 수사 목적에 쓰이는 것을 반대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조민아 양민철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