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입력 2022-10-18 04:02 수정 2022-10-18 04:02

먼 우주에서 외계인 흔적을 발견했는데 우리는 신호를 보내야 할까. 이런 논쟁이 벌어졌다고 해보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라면 교류 찬성파다(‘코스모스’). 외계문명이 있다면 공존을 터득한 선진문명일 테니 지구를 공격할 리가 없다. 외계인에 대한 공포는 우리의 후진성과 죄의식을 드러낼 뿐이다. 반면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확실한 교류 반대파다(‘제3의 침팬지’). 인간이 유인원에게 한 일을 생각해보라. 외계인 역시 열등한 지구인과 대화할 리가 없다. 학살하고 해부하고 파괴할 테고, 결과는 지구 파멸이다. SF소설 같은 고민일까. 그래도 별을 보는 천문학자는 낙관하고,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는 비관한다는 사실은 배웠다. 타인의 행동을 예측할 때 중요한 건 우리 자신에 대한 평가인 법이다.

이번엔 시간을 돌려 현생인류와 다른 종의 만남을 가정해보자. 13만년 전쯤 등장한 네안데르탈인과 10만~5만년 전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어땠을까. 앞서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해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자 3만년 전쯤 사라져버렸다. 유발 하라리는 특이한 실종 사건 원인을 폭력으로 해석했다(‘사피엔스’). 여러 고인류가 사라지고 한 종만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과거 저지른 학살 범죄를 암시한다는 거다.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답다.

다행히 학살 가설만 있는 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만남을 오래 추적한 전문가는 훨씬 평화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스웨덴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 DNA를 복원해 현대인 게놈의 2~4%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 이웃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에 따르면 중동의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 화석은 9만3000년쯤 됐다.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6만년 전까지 발견되니 적어도 중동에서 두 집단은 3만년쯤 공존했을 수 있다. 공존했다면 만났을 거고, 교배도 했을 거다. 그 결과가 우리 안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현생인류는 이 조각을 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문가들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덕에 현생인류가 유라시아 토착병과 싸울 수 있었다고 믿는다. 두 집단이 교배할 때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현생인류로 흘러갔다는 추측도 했다. 이건 불편한 발견이다. 유전자는 지배집단에서 피지배집단으로 넘어가 쌓인다. 주로 피지배집단 여성이 임신을 하고 아이는 여성 집단에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받은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의 지배를 받았을까. 그보다는 차라리 학살 시나리오가 낫지 않나. 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페보의 말처럼 과학적 가설이 보여주는 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세계관이다.

그런 점에서 페보가 소수자라는 건 축복이었다. 주류의 고정관념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동물학을 모르는 동물학연구원이자 인류학을 전공하지 않은 진화인류학연구소장, 남자를 사랑하다 여자와 결혼한 양성애자로 유명하다. 생물학에 대한 무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고인류 분석에 몰두한 원동력이 됐다. DNA 분자가 몇만년을 버틸 리 없다는 생물학 상식을 무시한 덕에 그는 4만년 전 뼛조각에서 DNA를 찾는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페보 덕분에 법의학자는 오래된 DNA를 찾아 범인을 잡고, 보존학자는 야생동물 배설물에서 DNA를 추출해 멸종위기종을 구한다.

노벨상이 발표될 때마다 나는 몇 세기 인간인가 묻고는 했다. 몸은 21세기에 있는데 머리에는 20세기에 배운 19세기 과학뿐이다. 페보의 자서전을 읽으며 현대과학과 접속할 드문 기회를 가졌다. 노벨상이 대중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