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먹통에 교회도 패닉

입력 2022-10-18 03:01
연합뉴스

전북 익산의 평안교회를 맡고 있는 안성국 목사는 주일 예배 준비로 분주하던 지난 15일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 평소 그는 실무자들에게 설교문을 작성해 매주 토요일이면 카카오톡으로 그 내용을 전달하곤 했는데, 카카오톡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한동안 쓰지 않던 USB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튿날엔 이웃 교회에 강의를 가서도 애를 먹었다. 그는 해당 교회에 카카오톡을 통해 강의에 활용할 각종 자료를 보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해당 서비스가 마비되면서 교회 실무자들은 자료를 내려받을 수 없었다.

지난 주말부터 주일까지 이어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주일 예배와 양육·교제 등 교회의 주요 사역에도 불편함이 이어졌다. 한켠에선 갑작스러운 소통 단절을 통한 신앙적 성찰도 눈길을 끌었다.

안 목사는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출강하는 대학의 학생들로부터 카카오톡을 통해 토요일까지 받을 자료가 있었는데 오늘 새벽이 돼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편리함이 불편함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꿈의교회(김학중 목사)는 2020년 3월부터 종이 주보를 없애고 매주 토요일 카카오톡으로 ‘미디어 주보’를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톡 서비스가 마비되면서 성도들에게 단체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갈음해야 했다. 꿈의교회 관계자는 “교역자들끼리도 카카오톡으로 소통하곤 했는데 서비스가 되지 않으면서 급하게 텔레그램에 채팅방을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 만남의교회 청년부를 담당하는 김호아 목사는 “부서·공동체별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 활발하게 운영됐는데 이번 사태로 ‘올스톱’됐다. 채팅방을 새로 만들기도 힘들어 빨리 복구되기만 기다려야 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카톡 의존도’를 돌아볼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초연결사회의 허약한 시스템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고상섭(그사랑교회) 목사는 “편리함만 추구하느라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졌는데, 이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경험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는 주일 예배에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침묵 속에서’를 낭송했다고 한다. 이 시는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시점에 김 목사가 교인들에게 전한 묵상의 선물과도 같았다.

“이제 열둘을 세면/ 우리 모두 침묵하자/ 잠깐 동안만 지구 위에 서서/ 어떤 언어로도 말하지 말자/…/바쁜 움직임도 엔진 소리도 정지한 가운데/ 갑자기 밀려온 이 이상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리라….”

김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도들이 카카오톡에서 오가는 편향된 정보들, 온라인으로 연결된 온갖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귀한 시간이 됐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가 준 교훈이 있다면 좀 멈추자는 것”이라며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장창일 최기영 박용미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