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5세대) 이동통신을 실용화한 건 한국이 처음이다. 2018년 12월 1일 0시부터 5G 전파를 발사하기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빨리 5G 이동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나라가 됐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통신 단말기 보급이 이뤄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5G가 등장하며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첨단기술이 속속 현실로 들어올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소 차이가 있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3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LTE, 즉 기존 4세대 이동통신(4G) 서비스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미 고화질 동영상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볼 수 있고, 쾌적한 속도로 인터넷에서 정보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이상 속도가 빨라질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5G, 더 나아가 6세대(6G) 이동통신을 새로운 시대 과학과 산업 혁신을 견인할 발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송 속도’만 생각해선 곤란해
5G 이상의 이동통신이 제공하는 장점 중 하나는 ‘초저지연성’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통신속도 자체가 빠르다는 점도 있지만 연결된 기계장치에 명령을 내리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응답성이 빠르다는 이야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부분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기도 한다. 4G의 지연시간이 10~20ms(밀리초)에 달했다면, 5G의 지연시간은 1ms에 불과하다. 10~20배나 향상됐다. 심지어 6G는 이보다도 10배 이상 빨라져 100마이크로초(μs) 이하의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6G의 최대 데이터 전송 속도는 5G의 50배에 해당하는 1000Gbps(기가비피에스) 정도다. 이 단계에선 각종 기계장비나 로봇이 명령을 내리면 즉각 응답한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데이터도 즉시 주고받는다. 원격으로 기계장치를 통제하기에 최적의 솔루션이 된 셈이다.
따라서 5G·6G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큰 폭의 기술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이동형’ 로봇이다. 바퀴가 달린 지상형 로봇,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공중이동 로봇 등을 말한다. 자율주행차나 드론도 이런 로봇의 한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차량과 차량 혹은 도로 주변 각종 시설물과 차량을 원격으로 연결해도 연결 지연 시간이 짧아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게 된다. 인간의 통제 없이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움직이는 자율주행차, 사고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배달로봇 등을 만들기 위해선 이런 기반이 필수적이다.
원거리 기계조작을 위화감 없이 해낼 수 있게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2019년 4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BAUMA) 2019’에 참가한 한국 기업 두산인프라코어와 LG유플러스는 한국 인천에 있는 공업용 굴착기를 5G 통신기술로 연결해 원격으로 움직여 보였다. 무려 8500㎞ 떨어진 곳에 있는 건설장비도 손가락과 버튼만으로 원격 조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같은 장점은 의료 이른바 원격 수술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난 6월 중국에선 5000㎞ 거리 5G 원격 로봇을 이용해 장쑤성 난징의 의사가 신장 커저우의 환자를 수술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5G가 기계와 기계를
5G 기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물인터넷(IoT)의 실용화다. 각종 전자장비끼리 인터넷으로 연결해 자동으로 정보(데이터)를 주고받도록 만든다. 즉 지금까지는 가전 장비 등을 모두 제각각 사용했다면 5G가 도입되면서 집안 전체, 사무 공간, 공장, 더 나아가 도시 전체를 마치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움직이도록 만들 수 있다. 이른바 스마트홈, 스마트오피스, 스마트팩토리, 스마트시티 등으로 불리는 혁신인 셈이다. 그렇다면 6G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우선 5G에서 등장한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2020년 공개한 ‘6G 백서’에 따르면 지상·항공·해저 등 지구 어느 공간에서도 제약받지 않는 통신도 가능해지는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6G가 제시하는 비전은 어떤 것일까. 전문가들은 기계끼리의 연결을 넘어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른바 인간기계연결기술(HCI)이 급속도로 발전할 기틀이 깔린다는 것이다. 지금도 음성 인식, 제스처 분석 등 일부 HCI 기술은 있다. 그러나 6G 정도가 돼야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소통하며 인간과 기계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려면 이는 필수적이다.
차세대 통신기술 개발 늦춰선 안 돼
한국은 5G에 관한 한 세계 최상위권 기술을 갖고 있다. 문제는 지금에 안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전 세계 주요국들이 앞다퉈 6G 개발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통신 기술 발전의 역사를 봐도 현재 6G 연구에 뛰어드는 것은 전혀 빠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처음 1G가 시작한 이후 통신기술은 10년 주기로 한 세대씩 올라왔다. 5G 역시 2000년대 후반부터 준비를 해왔기에 가능했다.
글로벌 경쟁도 치열하다. 유럽에서는 지난해부터 6G 연구·개발(R&D)을 위한 ‘6G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만 약 3500억원에 달한다. 또 이를 지원하는 8개 연구·개발 프로젝트 ‘6G 스마트 앤드 네트워크 서비스’에 약 1조2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편성해놓은 상태다. 중국도 매섭게 달려들고 있다. 국가 주도로 6G 연구·개발을 진행해 4500억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도 공공무선망혁신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2500억원 수준이다. 민간 주도가 강한 미국 성격을 감안하면 절대 적지 않은 액수다. 한국도 지난 8월 발표에 따르면 6G 연구·개발에 9000억원을 들일 계획이다.
5G가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 제시됐던 장밋빛 희망과 지금의 사회는 조금 달라 보인다. 여기에 대해 “실제로 현실로 다가오려면 6G 세상은 돼야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과거를 보면 이런 예측은 일견 타당하다. 1G 때도 전화는 가능했지만 쾌적한 통화가 가능해진 건 2G가 넘어서였다. ‘동영상과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슬로건은 3G 때 나왔지만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건 4G에 이르러서였다. 5G가 되면서 마침내 사물인터넷 세상이 열렸지만, 이것 역시 완전히 실용화되려면 6G 시대는 돼야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 본다. 모든 기술이란 등장의 시기가 있고, 완숙의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6G가 세상에 등장하고 다시 보편화할 세상, 앞으로 10여년 후가 기대되는 이유다.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