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강제 수용 공화국, 개발 대 약탈

입력 2022-10-18 04:05

“경제 개발에서 공용 수용은 유용한 도구지만 재앙도 부른다… 근래 심각한 갈등 중 한국발이 여럿이다”라고 한 외국 석학이 2017년에 썼다. 서울 숭례문 방화와 용산 참사도 염두에 뒀으리라. 특히 작년엔 국민 히스테리를 낳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맹지나 용버들 같은 용어를 지겹도록 들으며 공공의 꾼들에게 분노했다. 대장동 게이트에서 희대의 탐욕에 경악했다. 이들의 뿌리는 약탈적 제도였다. 그간 한국에서 강제 수용은 대단했다. 정부는 통계 작성 이후에만 6000㎢ 훌쩍 넘게 수용했다. 열 중 하나인 민간 수용은 이 통계에서도 빠졌다. 대략 국토의 7%를 빼앗다 보니 갈등이 심했다. 최근 행정심판과 행정소송만 봐도 매년 1500건과 1600건이다.

헌법(제23조 제3항)의 수용권은 최종 수단이어야 한다. 공항과 같은 인프라는 필요한 다수 토지 중 하나만 빠져도 낭패다. 이를 아는 주인들이 가격 더 받으려 버티니 거래가 힘들다. 그때 보상금은 주되 그냥 뺏는 게 ‘수용(taking)’이다. 하지만 필요조건들이 있다. 첫째, ‘공익성’이다. 일반 시민(공공성)에게 더 큰 유익을 주는 효과(효율성)가 현저해야 한다. 안 그러면 사적 용도로 툭하면 수용한다. 둘째, ‘정당 보상’으로 공정성을 확보한다. 헐값이면 과다 수용하고 반대로 마구 값을 쳐주면 가건물처럼 과잉 투자하므로 정당 보상은 효율도 담보한다. 셋째, ‘시장거래가 좀체 힘들 때’만이다.

불행히도 이 금과옥조를 깨는 수용이 넘쳤다.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 우선 난립하는 법률부터 줄이자. 기본법(토지보상법) 외에 무려 112개 법률에서 수용권을 따로 준다. 세계 금메달감이다. 그중 58개에서 대놓고 민간에게 수용권을 준다.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업 인정’은 공익성 검증의 핵심 절차다. 그런데 가령 지자체장의 사업 승인만으로 대신 인정해주는 의제를 허용하는 법률만 93개에 이른다. 지자체는 흔히 사업시행자 입장에 서므로 이건 수험생을 감독관으로 만드는 기형이다. 그러니 이제껏 수용의 99.5%는 의제를 썼고 검증 기제는 무력화됐다.

보상도 턱없다. 토지 보상은 시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로부터 출발하고 보완 공식에도 허점이 많다. 게다가 보상금의 2~3할은 양도세로 되뺏는다(박성규 박사). 영업손실과 이주비용 보상도 빈약하다. 거꾸로 개발계획 발표 직전 사들이는 내부 정보 꾼들에겐 이로운 규정들이 숱하다. 협의 과정은 강압적이다. 억울해 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을 신청해도 주민 의견은 무시된다. 수만건을 분석했더니 위원회는 한 건당 1분도 안 썼다(강준원 변호사). 공공, 원주민, 시행·건설사 간 개발이익의 합리적 분배도 검토가 필요하다. 이익률 제한과 개발부담금 인상 같은 대증요법들은 못된 관치만 키운다.

전국에서 연일 발표되는 개발 계획 책임자들에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청을 강권한다. 행복로를 뚫겠다면서 불행을 부르면 되겠는가. 이따금 주민이 보상금 덕을 봤다고 보도된다. 하지만 LH 사태에서처럼 그건 꾼들이 단기로 암약하는 대형개발사업 일부에 국한된다. 반면 1990년대 논란의 동강댐 사건 등을 연구하며 접해온 사례들에서 주민은 대개 희생자였다. 16세대 빌라의 절반만 수용하고선 건물을 토막 내겠다고 나머지 세대를 협박했다. 개발제한 규제로 이미 제약받던 대장동에선 합법적으로 보상금을 후려쳤다. “나랏일이니 떠나야지요.” 결국은 취소됐으나 댐 건설을 한창 밀어붙이던 동강에서 고사 직전 주민들과의 인터뷰 중 들었던 선한 어르신의 넋두리였다. 함께 고민했던 제자들과 간만에 그 넓은 수몰예정지역을 훑으니 굽이굽이 경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법부의 소수 합리적 결정들에서 희망을 본다.

김일중(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