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은 빈곤 및 기아 퇴치를 위한 노력과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유엔이 1992년 제정한 기념일이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최대 공동목표인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첫 번째는 ‘빈곤 퇴치(No Poverty)’다. 그만큼 빈곤은 전 세계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다.
그동안 감소하던 전 세계 빈곤 인구가 최근 코로나19와 기후변화 영향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5년 7억4400만명이었던 절대빈곤 인구는 2019년까지 매년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2020년에 다시 7억3200만명을 기록하며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유엔의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상태보고서(SOFI)에 의하면 2021년 전 세계 기아 인구는 8억2800만명으로 1년 사이 4600만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키르기즈공화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키르기즈공화국 인구의 3분의 2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데 2018년 22.4%, 2019년 20.1%로 점점 감소하던 빈곤율이 2020년 25.3%로 급격히 높아졌다. 키르기즈공화국의 대다수 농민은 농업과 축산업을 겸하는 소규모 복합영농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농업 기술과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낮은 생산성은 시장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문제를 야기했다.
굿네이버스 키르기즈공화국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충북대학교와 함께 2018년부터 오쉬, 바트켄, 추이 지역의 총 30개 농촌 마을에서 지역주민들의 자립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초환경 개선 및 인프라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마을에 꼭 필요했던 식수·관개 시설을 확충했고, 허허벌판에는 도로와 가로등도 하나둘 설치했다. 보건소와 학교 개보수 사업 등을 통해 기초 사회 서비스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접근성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양봉, 유가공, 봉제, 제빵 공장 등 총 39개의 생산 및 판매 시설이 구축되면서 새로운 일자리와 부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자립 기반도 마련됐다.
이처럼 작은 농촌 마을에 찾아온 좋은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주민들의 인식 변화였다. 지난 4년 동안 30개 농촌 마을에서 진행된 지역 개발 프로젝트는 모두 마을 주민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추진한 사업이다. 각자 생계유지에 바빴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동체의 발전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건축 공사가 있는 날이면 자원봉사로 시멘트와 벽돌을 나르며 힘을 보탰다. 마을을 관할하는 지방정부에서도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적극적인 예산 편성 및 행정 지원 등을 통해 사업의 성공을 도왔다.
이번 지역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마을의 리더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한 협력이 시작됐고, 마을 주민들이 지역 개발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의 주민은 “새로운 농업 기술로 부가 소득을 얻게 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온실 전문가가 돼서 다른 마을 주민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자립의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이로 인한 갈등의 기저에는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자립 의지도 중요하다. 나 자신에게 고정돼 있는 시야를 조금만 넓혀 지구촌의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그 작은 도움이 마중물이 돼 한 마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까지 바꿀 새로운 변화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홍수 굿네이버스 키르기즈공화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