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고창읍의 한 창고에는 잘 다듬어진 전통 한옥 자재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목부재와 기와·주춧돌·석재 등으로 포장까지 마쳤다. 자재들은 이번 주 중 배에 실려 필리핀으로 운반된다. 한옥건축 전문인력 10여명은 필리핀 마닐라 최대 쇼핑몰 내 K타운에 이 자재들로 멋진 한옥 정자와 정원을 만들 계획이다. 전북대가 두 번째로 성사시킨 한옥 수출이다.
전북대 고창캠퍼스 안에 있는 한옥건축기술종합센터(한옥센터)는 전통 한옥의 계승 발전과 세계화를 이끄는 산실이자 선구자다. 남해경 건축공학과 교수(한옥건축기술종합센터장)와 인간문화재인 최기영 대목장 등 20여명이 교육과 산업을 연계, 새로운 한류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한옥센터의 시작은 2010년 한옥건축기술인력양성사업단이다. 2년 뒤 고창캠퍼스에 터를 잡은 뒤 우리나라 최고의 거점 한옥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2012년 환경대학원에 한옥학과를 개설하고 올해 초엔 기업체와 계약한 한옥건축학과를 최초로 열었다.
그동안 배출한 전문인력만 2000명이 넘는다. 수료생 중 85% 정도가 관련 업체에 취업했고 3팀은 창업을 했다. 윤혁씨 등 3명은 문화재 보수기술자가 됐다. 8개월 과정을 마치고 취업한 이태우(64·전북문화재돌봄센터)씨는 “교육을 받으며 ‘일만 하는 목수’가 아닌 ‘생각하는 목수’가 됐다”며 “우리나라 최고 시설과 교수진 덕분에 목공 등 여러 자격증도 따고 다시 직장도 얻었다”고 말했다.
한옥센터는 온돌교육과 한옥연수, 한옥체험 등의 20여개 단기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 중 정읍 김명관 고택을 활용한 견학 체험은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6년째 이어진 이 프로그램 덕분에 예전엔 썰렁했던 이곳에 지금은 주말에 관광버스가 온다. 또 국내외에서 1년에 10차례 이상 한옥전시회를 개최했다. 유네스코 세계학술대회에서도 주제발표를 했다.
이 같은 성과로 전국 250여개 한옥교육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옥건축 우수 교육기관’에 뽑혔다.
한옥센터는 지역과의 ‘따뜻한 동행’에도 힘썼다. 교육생들과 함께 농촌 취약계층 집고쳐주기 봉사활동을 매년 해오고 있다. 실습하며 만든 정자 20여개를 전주무형유산원과 KBS전주방송국, 고창군청 등의 뜰에 선물했다.
무엇보다도 중점을 둔 것은 수출을 통한 한옥의 세계화다. 한옥센터는 지난 4월 베트남에 첫 한옥을 지어줬다. 12월엔 호주 시드니에 한옥 정자와 커뮤니티 센터가 세워진다. 미국 조지아주 엘리제이시에 한옥 40채를 건축하는 한옥단지 조성 사업 계약도 했다.
김윤상 건축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알제리 수출이 성사돼 포장을 마치고 대금까지 받았지만 코로나19와 현지 사정으로 인해 아직 대기 중”이라며 “현재 10여개 나라와 수출을 협의하고 있어 센터 가족들을 바쁘고 설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관과 민간업체의 의뢰도 크게 늘었다. 어느 소도시에 한옥 1500여채를 만드는 단지 조성도 협의 중이다.
그 사이 기술개발에도 힘을 써 상당수의 특허를 받았다. 상용화될 경우 한옥 건축비가 꽤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모두 지방대와 작은 도시에 있는 산하기관이 묵묵히 이뤄낸 결실이다. 김동원 전북대 총장은 “우리 대학이 보유한 교육 역량과 자원을 적극 활용해 한옥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류 문화를 이끄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남해경 전북대 한옥센터장
“독일 바우하우스처럼 세계적 한옥교육기관으로 육성”
“독일 바우하우스처럼 세계적 한옥교육기관으로 육성”
“K팝과 K뷰티, 한복·한식 등에 이어 우리 한옥을 세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을 날이 곧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해경 전북대 한옥건축기술종합센터장(사진·64·건축공학과 교수)은 17일 “전통 한옥 계승과 세계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 센터장은 한옥센터를 최고 전문인력양성기관으로 우뚝 서게 한 사령관이자 한옥 세계화의 전령사다. 전북대를 졸업하고 모교 강단에 선 그는 2010년부터 전북대의 한옥 부흥 프로젝트를 앞장서 이끌고 있다.
남 센터장은 “지방대에서도 전국 1등 학과를 만들어보자. 지방대 나온 교수도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 보자는 욕심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선운사에서 한 행사를 진행하던 중 어느 관람객이 한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떠올렸다. “전북대 한옥, 그 유명한데 아녀? 외국에 수출도 하고….”
그는 초기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교직원과 함께 뛰어 700억원이 넘는 국가예산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있다. 남 센터장은 “한옥마을이 가장 유명한 전주에서 한옥 전시회 한번 한 적이 없다”며 “전주에 한옥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30여년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해 오면서 “조만간 전북대에 (한옥) 정규학과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이곳을 독일의 ‘바우하우스’처럼 세계적인 한옥교육기관으로 만드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는 후학 양성과 한옥 계승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25일 ‘자랑스런 전북인 대상’ 문화대상을 받는다.
고창=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