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대화의 기본

입력 2022-10-17 04:08

집집마다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는 고질적인 고민거리다. 사용 시간, 방법 등을 놓고 여러 약속과 ‘당근’을 제시해도 실패하고, 폰 반납을 포함한 각종 제재 수단을 사용하다 갈등을 빚은 사례는 숱하다. 그럼에도 ‘스마트폰 사용 규칙’을 정하는 건 부모로선 포기하기 힘든 주요 개혁 과제다. 평행선을 걷듯 접점을 찾기 힘들어도 협상은 계속된다. 물론 “이야기 좀 하자”며 대화를 제안하는 쪽은 주로 부모인데, 아이가 ‘대화의 장’에 협조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각종 회유와 협박, 설득이 동원된다.

스마트폰 사용 개혁 과제를 둘러싼 부모 자식 간의 ‘협상 과정’을 떠올린 건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맡은 김문수 신임 위원장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김일성주의자”라고 말하는 등 ‘극우 유튜버’로 활동했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귀를 의심할 정도로 과격했지만 더 놀라게 한 건 다른 발언들이었다. 그는 민주노총에 대해 “김정은의 기쁨조”라고 했던 과거 발언의 해명을 거부했다.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노사 입장 차이가 큰 ‘노란봉투법’에 대해 “소유권을 침해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대놓고 경영계 입장에 손을 들고, 대화의 중요한 축인 노동계와는 선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과격한 발언들은 ‘정치인 김문수’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애써 넘겨본다쳐도, 이들 발언은 달랐다. 경사노위는 노동계, 경영계, 정부가 모두 참여해 노동 개혁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타협점을 찾기 위해 꾸려진 사회적 대화체다. 위원장에게 장관급 지위, 위원회엔 대통령 직속 기구 위상이 부여된 건 노·사·정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중재하는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애초 정치적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온 극우 유튜버 정치인이 어울리진 않았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 몸담았고 경기지사로 행정도 경험한 정치인이 그 자리의 역할을 이렇게 수행할 줄은 몰랐다. 대화를 시작하는 판에 각 주체를 참여시키려면, 상했던 마음도 풀게 하려고 애써야 하는 게 상식이다. 김 위원장 본인이 취임식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나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한 말씀 잘 듣고 있다”면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 아니었나.

하물며 부모 자식 간에 스마트폰 사용 습관 고치기를 놓고 대화할 때도 가급적 상대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고, 아이 마음이 열려야 실질적 변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전적 의미처럼 대화는 서로 마주할 수 있어야 시작되는 게 기본이다.

더욱이 비정규직 문제부터 근로시간, 임금구조 등까지 노동시장 과제는 개개인의 실질적 삶에서부터 우리 경제사회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과 모두 엮여 있다. 그만큼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나름의 생존권을 거는 각오로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1998년 김대중정부 때 처음 출범한 노사정위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실효성 논란 등을 거치면서도 유지된 건 정부 주도 정책이나 국회 입법만으로 노동시장 문제를 한 번에 개혁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 다수석을 확보하지 못한 윤석열정부는 타협 없이 개혁을 추진하긴 어렵다. “경사노위를 폐지하려는 목적으로 위원장이 된 것이 아니라면 신중하게 처신해달라”는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의 말처럼 판을 깨려는 게 아니라면 ‘대화의 기본’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