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자금난 악순환’… “이자부담 커도 은행문 두드린다”

입력 2022-10-17 04:05

고금리에도 기업의 은행대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늘어난 생산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잇따른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자금난이 심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2172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경제상황 관련 기업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 4곳 중 3곳이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로 자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16일 밝혔다. 기업들은 은행·증권사 차입(64.1%)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내부 유보자금(23.9%), 주식·채권 발행(7.1%) 같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금을 대는 기업은 4곳 가운데 1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은행 대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진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해 늘어난 자금조달 수단(복수 응답)을 묻자 응답 기업의 64.4%가 은행·증권사 차입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그만큼 이자 부담도 높아졌다. 경북에 있는 중소 식품제조업체 A사 관계자는 “식재료 가격이 올해 초보다 적게는 30%, 많게는 55%까지 올랐다. 자금 구하기 자체가 쉽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은행과 금융기관을 찾는 게 일상이 됐다”며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대출이자마저 계속 오르고 있다”고 호소했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현금흐름보상비율은 1년 전보다 크게 떨어졌다. 현금흐름보상비율은 현금 수입으로 이자 및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기업의 단기채무 지급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된다. 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와 제조업 상장사 897곳의 분기별 현금흐름보상비율을 분석했더니 올해 2분기 현금흐름보상비율은 45.6%로 지난해 2분기(81.2%)와 비교해 35.6% 포인트나 급락했다.

지난달 국제결제은행에서 발표한 올해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43개국 가운데 15위로, 2017년(19위)보다 4단계나 뛰었다. 2017년 92.5%였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15.2%로 22.7% 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비교 대상국 중 2위에 해당하는 증가세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지난 9월 대한상의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이 손익분기를 고려해 감내할 수 있는 기준금리 수준이 연 2.91%이었는데 이번 금리인상 조치로 감내 수준을 넘어서게 됐다”며 “이제는 투자 위축을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기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위한 정책자금 지원을 늘리고,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화하는 금융정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