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자취를 남기는 일입니다. 그 자취를 후대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백종근(68) 미국 비버튼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가 증조부 백낙규(1876~1943·얼굴) 장로가 심은 신앙의 흔적을 추적한 이유다.
동학농민운동에 투신해 우금치 전투에 참전했던 백 장로는 1900년 하위렴(윌리엄 해리슨)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접했다. 이후 전북 익산에 동련교회와 계동학교를 설립했던 1세대 신앙인이었다. 조선의 8대 문장가로 꼽혔던 옥봉 백광훈의 12대손이기도 하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만난 백 목사는 “역사적 사실을 사건의 흐름만으로 보면 드러나지 않는 유기적 관계를 놓칠 때가 많다”면서 “역사를 경작해 온 주체들의 삶을 바로 인식할 때 고리처럼 연결된 역사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증조부의 삶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백 목사는 한양대 공대 졸업 후 산업연구원(KIE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도미, 텍사스 오스틴 장로교신학교에서 교역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장로교(PCUSA)에서 안수받고 비버튼한인장로교회에서 목회했다.
그가 연구한 증조부 백 장로의 회심은 미국남장로교의 전북 지역 선교 역사와 맞닿아 있다. 각지를 순회하며 조선 민중과 만나며 복음을 전했던 ‘장터 선교’의 선구자였던 하위렴 선교사는 미국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전주 신흥학교와 군산 영명학교, 목포 영흥학교 3개 학교의 기틀을 닦았다.
백 장로가 하위렴 선교사를 만난 곳도 장터였다. 백 목사는 “증조부가 하위렴 선교사에게 받은 ‘신약마가젼 복음셔언해(마가복음)’를 읽으며 복음을 받아들였던 과정이 당시 평범했던 이들이 신앙인이 됐던 과정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증조부의 회심 여정을 통해 평범한 이들이 신앙인이 되는 과정을 엿본 셈이다.
이 같은 백 장로의 삶과 신앙은 백 목사가 쓴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토박이 예수꾼 백낙규 장로의 영성과 신앙(해드림출판사)’에 담겨 있다. 백 목사는 조만간 하위렴 선교사의 사역을 기록한 ‘조선 선교사 하위렴의 선교행전’도 펴낸다. 그는 “하위렴 선교사가 남긴 글과 그의 고향과 모교, 노회에 남아 있는 사료를 중심으로 그의 사역을 연대별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신앙인들에 관한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백 목사는 “증조부와 같은 사연이 사실 무궁무진하고 이런 사역이 발굴돼야 1885년부터 시작된 선교역사가 현재와 이어진다”면서 “앞으로도 개인의 삶과 신앙의 이야기들이 지속해서 소개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교회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위대한 이들만 복음의 역사를 썼던 건 아니었다”면서 “평범하고 소박한 이들의 회심이 지금의 교회를 일군 동력”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