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발이 7차 핵실험을 위한 군불 때기 차원을 넘어 한국의 재래식 군사 방어력까지 시험하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13일 밤과 14일 새벽 사이 북한 군용기 10여대가 군사 분계선 인근에서 위협 비행을 하는가 하면 서해에는 130여 발, 동해에는 40여 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도 발사했다. 우리 국민이 잠든 사이 무려 4시간37분 동안 도발했으니 남침훈련과 다름없었다. 특히 포탄이 떨어진 지점은 북방한계선(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9·19 남북군사합의를 대놓고 위반한 셈이다. 1시간 50분 동안 북한 군용기 10여대가 비행금지구역 북방 5~7㎞까지 근접하자 F35A 등 우리 군의 공중전력이 긴급 출격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연출됐다.
북한 도발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채택한 9·19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날 아침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북한이 9·19 합의를 깬 것에 대해 “하나하나 저희도 다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이미 합의 파기 검토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나아가 “물리적인 이런 도발에는 반드시 정치공세와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사회적 공세가 따른다”며 확고한 ‘대적관’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헌법수호 정신을 강조했다. 이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유행했던 ‘반공·방첩’ 구호만 빠졌을 뿐 향후 대북 전략을 강 대 강 대결을 통한 ‘공포의 균형’으로 설정한 것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이날 마침 5년 만에 독자적인 대북 추가 제재를 단행한 것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강 대 강 대북 전략엔 철통같은 대비태세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군이 북한에 자꾸 빈틈을 보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북한이 저수지 발사 등을 통해 미사일 탐지와 요격을 회피하는 방식을 구사하는 와중에 우리 군이 쏜 미사일이 낙탄 사고를 내거나 추적 신호가 끊기는 일까지 생긴 것은 군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우고 북의 도발 수위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는 9·19 합의를 섣불리 파기했다가 북한에 말려들 수도 있다. 북한이 9·19 합의를 조롱하면서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을 통해 대미 관계의 새 판을 짜려는 차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진의 파악이 우선이고 한·미, 한·일의 공조가 더욱 절실한 이유다. 미국과의 핵우산 강화 협력도 중요하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보교환과 긴밀한 대화가 더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