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당신은 무엇을 발견했나… 재난? 가족?

입력 2022-10-16 21:16
홍순명 작가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성찰해온 재난과 가족을 주제로 신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한다. 재난 연작이 전시된 전시장 모습이 스펙터클하다. 사비나미술관 제공

코로나 시대 우리가 새삼 발견한 것은 가족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을 하며 부모와 자녀가 한 집에 종일 모여 지냈고, 하루 세끼 밥을 함께 먹었다. 홍순명(63·사진) 작가에게도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던 시기였다. 그에겐 어머니였다. 사춘기 중학교 시절 이후 50년 넘게 의견충돌하며 불화했던 노모(90)와 화해의 길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서울 은평구 진관1로 사비나미술관에서 하는 홍순명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재난, 가족’에서는 그렇게 “어머니와의 관계에 한판 살풀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회화 연작이 펼쳐져 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어머니는 제가 법관이 되기를 희망했고 저는 미술반을 하며 화가가 되고자 했다. 신앙조차 어머니가 바라는 바대로 잘 되지 않았다”며 내밀한 개인사를 털어놨다.

보도사진을 참조해 작업을 해왔던 작가는 이번에는 해묵은 가족 앨범을 꺼냈다. 가족사진을 토대로 한 회화는 최소 3개의 이미지가 혼합된다. 얼룩 안쪽에 그려진 모노톤의 내피는 대체로 부모님의 젊은 시절, 혹은 오래된 가족 앨범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얼룩 바깥을 이루는 그림은 작가 본인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회적 사건이 겹쳐진다. 그는 삼중작업을 종이테이프 뜯어내기 방법을 통해 구사한다. 어릴 적 온가족이 창경원에 놀라갔던 사진, 한강대교 기공식의 축포, 그리고 자신이 유학 갔던 파리 에콜드보자르(국립고등미술학교)의 건물 등이 한 화면에 중첩돼 있다. 어릴 적 가족사진 장면을 먼저 그리고 종이테이프를 붙인 뒤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진 이미지를 중첩한다. 세 번째 이미지는 실루엣의 모양은 어머니가 출생한 1932년부터 작가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1985년까지 한국사회의 주요 장면에 관한 것이다. 1970~80년대 개발경제 시대의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설현장과 서울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콘크리트 건물 등의 이미지들이다. 개인사는 사회사를 떠날 수 없다. 법관이 좋은 직업이라는 어머니의 믿음이 당대 사회의 인식과 가치가 투영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연작의 제목은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흔한 믿음’이 오해의 출발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깔려 있다.

각각 2020년(위쪽), 2021년에 제작된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연작(캔버스에 아크릴과 유채). 사비나미술관 제공

흥미롭게도 작가와 관련된 이미지는 항상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관이 화가보다 더 낫다는 어머니의 믿음에서 생긴 간극은 그의 회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말끔한 표면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테이프가 뜯겨진 자국처럼 얼룩덜룩하다. 캔버스 표면은 상처를 뜯어낸 자국처럼 흉터를 남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색조 안에 어울리고자 한다.

작가는 “10년 전부터 이런 작업을 구상했지만 시간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마침내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작가는 2020년 연말 부산 조현화랑에서 이 연작을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을 가졌다. 개막식에는 부산에서 사는 모친도 와서 구경을 했다.

작가는 부산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파리에 유학 가 에콜드보자르를 졸업했다. 처음엔 설치미술을 하다가 2002년부터 회화 작가로 살고 있다. 작가는 “설치미술은 다 하고 나면 멋진 옷을 입었어도 내 옷이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회화는 잘 안 돼도 내 것을 만든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심이 아닌 주변의 사물을 주인공인 것처럼 포착해서 그리는 ‘사이드스케이프’(옆의 풍경)로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파리에서 동양인으로 살면서 “내가 꽃이 아닌 꽃받침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사이드스케이프는 그때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보도사진을 주로 참고했는데, 보도사진이야말로 항상 주인공이 명확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재난을 주제로 한 신작을 내놨다. 일단 스케일부터가 관객을 압도한다. 최대 가로 12m나 되는 크기에 산불과 폭우 등 자연재해를 시각화했다. 우리는 거대한 크기의 자연이나 홍수 등 감당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전율한다. 거대한 캔버스에 담은 재난 풍경은 그래서 낭만주의 풍경화가 주는 숭고미가 있다. 그는 “우리는 적절한 양의 비는 좋다고 하면서 엄청나게 많이 퍼붓는 폭우는 재난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난과 재난 아닌 것의 구분은 인간 중심의 관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난 역시 인간중심주의 사회에선 조연의 풍경, 즉 사이드스케이프인 것이다. 11월 20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