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에 벌어진 일이다. 출근할 때 종종 차를 몰고 가는데 가는 길이 상습 정체 구간이다. 서울 내부순환로를 따라가다 마장램프로 나가는 길은 적어도 1.5㎞씩 길게 줄을 섰다가 10분은 족히 기다린 뒤에야 청계천변으로 내려가곤 한다. 이날도 최근 선물 받은 베토벤 첼로 소나타 앨범을 쩡쩡 울리며, 위험하게 끼어드는 차는 없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벗어나는 내리막 초입에 도달했을 즈음, 갑자기 웬 큰 강아지 한 녀석이 등장해 내부순환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서 있는 차들을 유유히, 그러나 꽤 빠른 속도로 지나친 뒤 다른 차들이 규정속도 70㎞/h로 달리는 1, 2차선 도로로 역주행하듯 향했다. 고속도로에 왕왕 강아지를 버리고 가는 일이 많다고는 하지만, 서울 한복판 고가도로에서까지 마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얼른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했고, 안내원은 시설관리공단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녀석이 설령 구조가 되더라도 안락사할 가능성이 크단 생각에 몹시 착잡해졌다. 그 녀석은 목에 사람이 채워줬을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강아지들은 자기가 버려진 곳에 다시 가서 주인을 찾는다고들 한다. 고가도로나 고속도로 같은 곳에 버려지면 물이나 먹이를 구할 수도 없고, 구조하고 싶은 사람들조차도 섣불리 차를 세우기 힘들다. 버려진 동물들은 길을 잃고 헤맨다.
지난 6월 프랑스에 갔다가 국회의원 선거 게시물 가운데 ‘동물당(Parti Animaliste)’의 벽보를 봤다. 인간의 얼굴들로 빽빽한 선거 공보물 판에서 붉은 부리를 한 오렌지색 오리가 그려져 있는 것이 무척 선명해 보였다. 경제 상황이 어둡다고 해서 “동물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저 사치스러운 구호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먹이를 찾으러 내려왔다가 생을 잃는 동물이 느는, 버려져서 길을 잃는 동물이 느는 겨울이 오고 있다. 공생의 가치가 길을 잃기 쉬운 시기에는, 자꾸만 메시지를 반복하는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다.
유재연 옐로우독 AI펠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