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북핵, 진실의 순간

입력 2022-10-14 04:11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32년 투우 경기를 관찰한 에세이 ‘오후의 죽음’에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투우는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되는데, 마지막 3막에서 투우사(마타도르·matador)는 지친 황소와 최후의 승부를 벌인다. 마타도르는 긴 칼로 소의 동맥을 한 번에 잘라 죽인다. 황소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찰나의 순간이 진실의 순간이다. 지금까지 전개된 과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진입하는 순간이고, 모든 상황이 결정되고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얀 칼슨은 1981년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스칸디나비아항공사 사장으로 부임했다. 칼슨이 조사해보니, 항공사 직원들의 고객 응대 시간은 평균 15초였다. 고객이 직원을 만나는 짧은 순간에 기업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고객을 15초 안에 만족시킬 수 있으면, 회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칼슨의 결론이었다. 스칸디나비아항공은 1년 만에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미국 강경파 존 볼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였다. 북핵과 관련한 진실의 순간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을 말하기도 하고, 북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일 수도 있다.

북의 핵·미사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을 이미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마타도르는 진실의 순간에 실패한다. 한 번에 황소를 죽이지 못한다. 서투르게 칼질을 하다가 뿔에 찔리기도 한다. 실패한 투우사는 분노한 관중의 야유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핵 위협이라는 진실의 순간을 잘못 다루면 민족의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 우리 자신과 냉혹한 국제 정세를 객관화할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