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끝난 게 아니다

입력 2022-10-14 04:08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너는 메이저리거가 될 순 없을 거야. 잘하면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선수는 될 수 있을 거야.”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1942년 계약을 원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세인트루이스 출신인 베라는 이듬해 고향을 떠나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2차 세계대전까지 참전한 뒤 베라는 야구로 돌아왔다. 1946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베라는 양키스에서 주전 포수로 우승 반지를 10번이나 꼈고, 올스타에 15번 연속 선정됐다. 명예의전당 입회, 등번호 8번 영구 결번은 당연히 따라왔다.

지난달 15일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는 이변 없이 끝났다. 언론이 예상했던 서울고 김서현, 충암고 윤영철 등 유력 후보들이 대부분 1라운드 초반에 호명됐다. 유망주를 평가하는 각 구단 스카우트들의 눈은 대개 비슷하다. 선수들의 신체 조건, 중·고교 시절 쌓은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 순번을 받은 선수들은 가족 친구의 환호 속에 무대에 올랐다. 단장이 직접 유니폼을 입혀주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들은 대개 3억원 내외의 계약금을 받았다. 마지막 11라운드 지명 선수들은 3000만원 안팎의 계약금을 받았다. 출발부터 액수 차이가 크지만, 지명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다.

올해 프로야구 드래프트 지원자는 1165명. 이 중 110명만이 프로구단의 선택을 받았다. 나머지 선수들은 대학 혹은 독립구단, 또는 구단의 육성선수로 야구를 이어갈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아예 전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아쉽게 프로에 지명되지 못하더라도 리그 대표로 성장한 선수들이 있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드래프트 행사 인사말에서 위로를 먼저 건넨 것은 선택받지 못한 다수의 상처를 알기 때문이다.

허 총재가 말한 그런 선수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연습생 신화’의 선구자 장종훈. 고교 졸업 후 받아주는 팀이 없었던 장종훈은 빙그레 이글스의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하던 훈련 보조 요원으로 출발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연습해 2군 선수를 거쳐 1군에 올라 프로야구를 상징하는 홈런왕이 됐다. 1992년엔 41호 홈런을 기록, 프로야구 한 시즌 40홈런 시대를 최초로 열었다.

LG 트윈스의 4번 타자 채은성.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해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했다. 군 복무와 2군을 거쳐 2014년에야 1군에 등록됐다. KT 위즈의 1번 타자 조용호도 부상 등 불운이 겹치면서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 사회복무요원, SK 와이번스 육성 선수를 거쳐야 했다. 2017년 1군에 데뷔한 이후 올해 첫 3할 타율을 기록했다. 지금의 채은성과 조용호가 될 때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드래프트 1순위가 프로에서 1등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누군가가 제2의 요기 베라, 제2의 장종훈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누군가가 프로 최고 선수가 돼 스카우트의 눈이 완전히 틀렸었다고, 언론의 전망이 전부 엉터리였다고 말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1973년 뉴욕 메츠 감독이었던 베라는 팀이 7월까지도 시카고 컵스에 9.5게임 차로 뒤진 지구 최하위를 달리고 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메츠는 그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임성수 문화체육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