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2004년에 세운 리움미술관은 우리나라 최고 컬렉션을 자랑하는 사립 미술관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그 아들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 등 삼성 오너 가족 2대에 걸친 취향이 혼합돼 컬렉션이 갖춰졌다. 미술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국립기관에 맞먹는다. 리움의 소장품은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른다. ‘이건희 컬렉션’의 상당량이 사후 국가에 기증될 때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나눠 보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 리움의 전시 방식을 보면 고미술이 홀대받고 있고, 심지어 유령 취급을 받는 느낌이 없지 않다. 리움은 지난해 10월 코로나로 운영을 전면 중단한 지 1년7개월여 만에 다시 문을 열며 재개관전을 가질 때도 현대미술에 방점을 찍었다. 즉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을 통해 스위스의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에서부터 한국의 중견 사진작가 김옥선에 이르기까지 2차 대전 이후 활동하는 작가 가운데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뽑은 주요 작가의 작품을 대중 앞에 등장시켰다. 외부 대여 없이 자체 소장품만으로 꾸미는 상설전도 기획전 주제와 맞춰 전시했다.
고미술 컬렉션은 상설전으로만 꾸몄다. 4층 고려청자, 3층 분청사기와 백자, 2층 서화, 1층 불교미술품과 공예 등 종류에 따라 전시했다. 어떤 큐레이션도 없다. 고려청자실의 경우 정병, 주전자, 항아리, 대접 등 종류별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한 점 한 점 조명이 은은한 고급 유리 케이스 안에 진열돼 있지만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는 거세된 채 ‘박제된 유물’을 보는 기분을 줬다. 서화실에는 조선시대 안중식의 청록산수화와 김득신이 그린 정조의 행렬도, 이재관이 그린 문인화 등이 나란히 전시되고 있지만, ‘왜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저 조선시대 회화들이 긴 진열장에 함께 들어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전체적으로 “리움 컬렉션이니 안 보고 배기겠어?”라는 오만한 태도가 읽힌다.
그사이 리움의 현대미술 기획전은 아시아 미술을 조명하는 ‘구름산책자’전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고미술은 상설전이니 아직도 1년 전과 같은 차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기획전을 마련해 과거 유물에 동시대의 의미를 입혀 불러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 후기 서화가 추사 김정희라는 인물의 고독과 좌절 등 예술적 성찰 과정을 통해 명작 ‘세한도’를 들여다보게 하는 ‘세한도전-한겨울 지나 봄 오듯’전, 국보와 보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관해서 질문을 던지는 ‘새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전 등이 그런 예다. 심지어 상설전인 ‘분청사기·백자실’마저도 달항아리 방을 따로 만들어 도자기 좌대를 아주 낮추고 미디어 아트로 달을 만들어 뜨락에서 달을 감상하는 기분을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의 관심에 비하면 리움에서 고미술품의 처지는 서러울 거 같다.
리움의 경우 과거에는 달랐다. 고미술품이 현대미술 기획전에 함께 나와 전시되고는 했다. 동시대 미술 전문가인 현 김성원 부관장 체제라 전공 특성상 어려운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인력을 보완해서라도 현대미술과 고미술의 균형을 맞추면 좋지 않을까. 굳이 사립미술관 전시까지 도마에 올리는 것은 워낙 리움의 고미술 컬렉션이 탁월해서다.
리움 컬렉션은 고미술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고미술 애호가인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수집을 시작해 국보인 ‘가야금관’ ‘비산동세형동검’, 김홍도의 ‘군선도병풍’ 등을 모았고, 그 아들 이건희 회장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추진해 크리스티 경매 등에 한국실이 따로 생겨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애써 수집한 고미술품을 유리 진열장 속에 그야말로 유물처럼 모셔두는 것은 책임 방기 아닌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