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국정감사를 받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정식 사건번호를 부여한 266건 중 불기소와 타 기관 이첩 등을 제외한 85건을 지난달 말 현재 수사 중이라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답변했다. 출범 이후 기소한 사건은 3건,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은 2건이었다. 압수수색 영장을 포함해 총 66건의 영장을 청구했는데 3분의 2인 44건이 발부됐다고 공수처는 밝혔다. 영장에 의한 체포나 긴급체포, 구속 사례는 아직 없었다.
공직사회 부패 척결과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큰 과제를 짊어졌지만, 공수처는 현실적으로 신생 기관 티를 벗는 데에만 오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6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운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사건 처리 과정을 ‘엑셀’로 관리했다. 수사력 자체가 현안이 되다 보니 김진욱 처장이 직접 나서서 검찰 ‘특수통’ ‘공안통’의 합류를 호소하기도 했다. 공수처가 국감을 앞두고 밝힌 올해 홍보예산 집행내역 중에는 검사와 수사관 모집 광고에 각각 200만원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있다.
정쟁 성격이 짙은 사건들이 접수되면서 공수처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들어 왔다. 수사가 더디면 “장기간 수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산다”는 말을 들었고, 수사가 주목받을 때는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았다. ‘무용론’이 제기되고 내년 예산이 올해(200억원)보다 23억여원 감액된 처지지만, 많은 법조인은 “기왕 출범한 수사기관은 안착해야 한다”고 한다. 공수처의 견제를 받는 검찰도 같은 시각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을 처음 면담할 때,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잘 협조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었다.
법조계 고위 인사들은 공수처가 ‘특별검사’를 모델로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공수처법이 애초 특검법을 기초로 만들어졌으며 대형 권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헌법재판관의 골프접대 의혹,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감사 의혹, 대통령실 사적 채용 의혹 등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들은 결코 ‘작은 사건’들이 아니다.
안착을 위해서는 국회 차원의 ‘애프터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법 해석·적용에 혼선이 여전한 만큼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고, 국가기관에 걸맞은 인력과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공수처가 수사하되 기소는 검찰이 결정해야 할 사건의 경우, 만일 구속 수사가 이뤄진다면 최장 20일인 구속 기간을 두 기관이 어떻게 나눠 쓸 것인지 등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공수처 수사관 다수는 민원 처리와 자료 제출 등의 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행정 사무직원 정원이 2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최근 6명의 부장검사 자리를 모두 검찰 출신으로 채웠다. 김 처장은 “저희가 기대보다는 천천히 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