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뮤지션도 종교음악만으론 밥벌이 못해”

입력 2022-10-13 03:05
박학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이 12일 서울 강서구 협회 본부에서 교회음악 저작권 인식 제고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1990년대를 풍미했던 포크송 싱어송라이터 박학기(59)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 부회장은 ‘아름다운 세상’ ‘비타민’ 등으로 MZ세대에도 친숙한 가수다. 부드럽고 명징한 목소리로 전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그가 전성기 시절 복음성가를 발표한 걸 아는 이들은 흔치 않다. ‘난 아직 당신을 잘 알진 못해요/ 하지만 오늘 밤 기도드릴게요’란 가사로 시작되는 ‘나의 기도’다.

12일 서울 강서구 협회 본부에서 만난 박 부회장은 “그 당시 신앙이 연약했던 저처럼 교회 안에 찬송가의 멋진 고백이 지금도 어색한 분이 있을 것 아닌가. 그런 분을 위한 곡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도 자신의 기독교적 고백이 반영됐다고 했다. “아름답고 희망적인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내용 역시 기독교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겨서다.

박 부회장은 이날 교회음악 저작권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기독 음악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작심 발언했다. “예배의 종교적 예열은 찬송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찬양만큼 신앙을 깊게 해주고, 비신자의 교회 문턱을 낮춰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찬양을 만드느라 고생한 음악인은 정작 수고의 대가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기독교인을 넘어 대중이 알 만한 복음성가를 작사·작곡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대중음악을 주로 추구한 자신과 동시대에 활동한 기독 음악인의 상황을 가른 건 저작권료라고 단언했다.

“제 세대 음악인이 활동한 80~90년대는 포크밴드 ‘시인과 촌장’이 등장하고 세련된 곡조의 찬양이 나오던 때예요. 찬양으로 쓰임 받겠다는 신실한 동료와 후배가 주변에 적지 않았습니다.”

이중엔 미국 버클리음대 등을 나온 유학파도 있고, 여러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촉망받는 인재여도 기독교음악만 해서 생활하는 건 불가능했다. 저작권 수익이 없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좋은 찬양을 만들 수 있음에도 가족을 부양하기 힘들어 대중음악으로 떠난 이들 가운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경우가 상당하다”고 했다.

그가 올 초 선임된 KOMCA 부회장이란 직함 때문에 이런 논의를 갑자기 꺼낸 건 아니다. 박 부회장은 KOMCA 종교위원회에서 4년여 활동하며 여러 목회자를 만나 교회가 기독 음악인의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 줄 것을 꾸준히 요청해왔다. 그는 “협회는 돈을 분배하는 곳이고 여기의 주인은 음악인”이라며 “저는 저작자에게 저작권료를 투명하게 잘 배분하는지 관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부회장은 “교회 성도 수마다 다르지만 월 1만여원 정도면 기독 음악인이 찬양을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다”며 “교회에서 찬양할 때마다 이 찬양을 만든 형제자매가 신앙 안에서 부족하지 않게 사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