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엔 인권이사국 낙선, 정쟁 소재 삼지 말고 원인 찾기를

입력 2022-10-13 04:03
11일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출을 위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신화, 뉴시스

우리나라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 실패는 충격이다. 3연임이 제한된 6년을 제외하면 2006년부터 5차례나 무난히 선출됐고, 출마한 아시아 지역 8개국 중 4위만 했어도 초유의 낙선 사태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보다 많은 표를 받은 방글라데시 등 4개국은 인권 모범국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정부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국제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추락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국가로 주목을 받았다. 불과 반세기 전에는 원조를 받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저개발국가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변신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 대한 인적·물적 기여도 상당하다. K팝과 K콘텐츠는 세계 문화 지형을 바꿔간다. 식민지배의 고통을 승화시켜 인류가 인권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기구 중에서 위상이 높고 영향력이 큰 곳의 선거에서 떨어졌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이유를 꼼꼼하게 따질 때다. 외교가에서는 최근 우리나라가 유엔 산하기구 선거에 14차례나 출마해 득표력이 분산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유엔 선거는 회원국끼리 표를 교환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외교 역량을 가늠해 꼭 필요한 곳에 진출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갑자기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를 견제하는 심리가 작용했다면 그에 맞는 세심한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외교 사안을 정쟁의 소재로 삼는 구태를 버려야 한다. 벌써부터 여야는 ‘국제 인권 현안을 소홀히 한 문재인정부의 책임’ ‘윤석열정부의 실속 없는 가치외교가 불러온 참사’라며 네 탓 공방을 시작했다. 외교에 여야가 있을 수 없는데 정치권은 서로 비난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