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긴 역사에서 지금은 최후의 국면일지 모른다. 실물 화폐인 현금이 디지털 화폐로 대체되고 있다. 이 대체는 디지털 결제수단의 발전에 힘입어 최근 몇 년간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만 가지고 다니면 도시 생활에 별 문제가 없을 정도다. 우리는 이렇게 조만간 ‘현금 없는 사회’에 도달할 것인가.
‘클라우드 머니’는 우리들 대부분이 별 생각 없이, 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한가 질문하는 책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일 수 있다.
저자 브렛 스콧은 현금 없는 사회를 빅파이낸스(거대 금융기관)와 빅테크(거대 기술기업)가 만들어낸 ‘가짜 진보’라고 비판한다. 현금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결제를 위해서 은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결제는 은행시스템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은행업계가 얻는 이익이 상당하다. 은행에게 현금과 ATM(현금자동인출기) 운영은 수익이 전혀 없는 짜증 나는 일이다. 반면 디지털결제가 널리 보급되면 이자와 수수료가 발생한다.
게다가 디지털 결제는 고객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발생시킨다. 고객 데이터는 지금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다. 현대의 디지털 결제시스템이 세계화된 금융회사들의 통제와 감시를 받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결제시스템에 의존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그들의 영향력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국가는 금융기관들이 가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의 등급을 매겨서 관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 중국이 지금 그런 사회로 가고 있다. 또 금융거래를 차단하거나 은행계좌를 동결시키는 방식으로 개인을 제재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금융시스템을 이용해 북한이나 러시아 같은 불량 국가들의 돈줄을 죄듯이.
미국 랜드연구소의 저명한 컴퓨터 과학자인 폴 아르메르는 이미 1968년에 ‘현금과 수표가 없는 사회가 사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했다. “모든 거래가 시스템을 통해서 진행되어,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했는지와 같은 모든 세부내용이 기록되고, 그 모든 정보가 단일한 중심점으로 전송되는 극단적인 경우는 분명히 사생활에 엄청난 위협이 된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마가렛 애트우트는 대표작인 ‘시녀 이야기’에서 여성들이 예속된 사회를 묘사하는데, 예속의 주요 수단은 현금을 폐지하고 컴퓨뱅크라고 불리는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그동안 편리와 진보, 힙함으로 묘사돼 왔다. 이 책은 현금 없는 사회를 빅브라더의 사회로, 디스토피아로 그려낸다. 현금을 몰아내고 디지털 결제로 대체함으로써 빅파이낸스와 빅테크, 국가는 빅브라더가 된다. 디지털 결제의 전면화로 ‘감시자본주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책은 현금 없는 사회의 문제를 섬뜩하게 제기하면서 디지털경제 시대의 핵심 문제로 감시자본주의를 거론해온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쇼샤나 주보프 하버드대 교수가 2019년 출간한 책에서 처음 제시한 감시자본주의는 우리의 정보를 통해 행동을 수집, 분석, 범주화, 예측해 상업적으로 이용함과 동시에 우리의 행동을 유도, 통제, 조종, 조건화하는 디지털 시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포착한 개념이다. 주보프 교수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의 감시자본주의를 우려했다면 스콧은 이 책에서 빅파이낸스가 감시자본주의의 핵심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국 최고의 금융 저널리스트로 파생상품 브로커 출신이다. 암호화폐에 관한 첫 번째 유엔 보고서를 작성했고, 빅파이낸스의 실체를 파헤치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번 책에서는 빅테크와 빅파이낸스가 결합한 디지털금융의 실체를 그려낸다.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대 금융과 금융업을 생생하고 쉽게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책은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화폐, 민간 은행들이 신용창조를 통해 발행하는 ‘뱅크칩’, 그리고 이들에 반발하며 등장한 암호화폐가 각각 어떻게 다르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설명해준다. 현금이 사라진다면 중앙은행의 힘은 약화된다. 대신 디지털 결제를 장악한 은행이 경제시스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현금 사용을 지지하는 것은 초국가적인 기업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이 된다. 기술과 금융의 결합에 반발하는 이들은 암호화폐라는 비국가영역으로의 탈출을 계속 꿈꿀 것이다.
이 책은 현금 사용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쓴 화제작 ‘화폐의 종말’과 대척점에 서 있다. 저자는 현금 사용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현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시스템에 접근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금융기관의 무책임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개인 데이터가 대기업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현금 사용은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진 않겠지만, 적어도 디스토피와 같은 사회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