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년간 한국 출판시장에서 가장 핫한 작가가 누구였을까 물으면 이슬아(30)를 꼽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글방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온 이슬아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유료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일간 이슬아’라는 구독 모델을 만들었고, 독립출판을 통해 책들을 출판했다. 그는 어떤 등단 절차나 출판 시스템의 승인 없이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매우 성공적인 작가가. 지금까지 에세이집, 인터뷰집, 서평집, 서간집 등 열 권의 책을 냈고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에세이스트로 자리 잡았다.
이슬아의 열한 번째 책은 장편소설이다. 이슬아가 소설을 썼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흔히 소설은 문학, 에세이는 비문학으로 분류되며 둘 사이에는 꽤 높다란 장벽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슬아는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게 에세이에서 소설로 건너왔다. 하지만 이슬아의 독자라면 그가 소설을 쓴다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을지 모른다. 이슬아는 형식이나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하실 계획은 없나요?” 소설 속에서 기자가 묻자 이슬아는 “지금까지 제가 쓴 것이 문학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라고 되묻는다. “등단문학은 문학의 한 갈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도 바깥에서도 온갖 종류의 문학적인 작품이 쓰이잖아요”라고 덧붙이면서.
이슬아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가녀장’이란 캐릭터와 작명만으로 이미 압도적이다. 가부장이 아니고 가모장도 아니고 가녀장이다. 딸(女)이 집안의 가장이다. 물론 젊은 딸이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사례는 현실에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을 가녀장으로 명명해 전면에 드러내고 새로운 가족 형태의 한 징후로써 가녀장의 시대를 선포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슬아는 소설에서 자신을 가녀장으로 등장시킨다. 책을 써서 돈을 번 ‘슬아’는 건물을 사서 출판사와 집필실, 가정집을 겸한 공간으로 꾸민 후 어머니와 아버지를 직원으로 고용한다. 아버지-어머니-딸로 수직화된 가족 관계는 딸-어머니-아버지로 재정렬되어 우리가 본 적이 없는 홈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슬아가 만든 책을 관리하는 게 어머니 ‘복희’와 아버지 ‘웅이’의 일이다. 팀장인 복희는 이밖에도 직원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드나드는 손님 접대를 담당한다. 말단 직원인 웅이는 건물 청소와 유지·보수, 운전 등을 맡는다. 슬아는 두 직원을 둔 덕에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다.
군대에서 장군의 차를 몰던 웅이는 이제 장녀를 모신다. 슬아에게도 장군 못지않은 고유한 지랄성이 있다. 복희의 월급은 웅이의 두 배다. 그의 시아버지는 “끼니마다 복희를 입주 가사도우미처럼 쓰고도 십 년 넘게 임금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딸 슬아는 시아버지와 달랐다.
가녀장의 등장을 통해 권력이 뒤집혀진 이 가족의 이야기는 시트콤처럼 유쾌하게 전개된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대하지 않았는지, 부모와 자식 간의 의사소통이 억압적이지 않았는지, 가사노동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건 아닌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중함을 잃어버린 건 아닌지….
“슬아는 개미처럼 글을 쓰면서도 된장을 담글 줄 모른다. 복희는 글을 쓸 줄 알지만 그걸 하느니 차라리 된장을 담그겠다고 말할 것이다. 복희의 엄마 존자는 된장 담그기에 도가 텄지만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이슬아는 가부장의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이 가능하다고, 그래도 가족은 가족일 수 있으며, 어쩌면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은 가족이 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