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언어로 쓰인 성경 보며 선교에 대한 의지 다졌으면”

입력 2022-10-13 03:02
‘아펜젤러 선교센터’에 성경책 110권을 기증한 민영진 목사. 국내 최고의 성경 번역가로 통하는 그는 구약 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하다. 국민일보DB

지난해 11월 서울 서대문구에 개관한 ‘아펜젤러 선교센터’(이하 선교센터)에는 이색적인 장소가 있다. 건물 4층에 마련된 49㎡(약 15평) 크기의 자료실이다. 잠시 고국을 찾은 선교사들은 이곳에 비치된 해외 각국의 자료들을 통해 선교지의 문화나 언어를 익히곤 한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 다양한 언어로 쓰인 성경책 110권을 기증한 이가 있다. 바로 국내 최고의 성경 번역가로 통하는 민영진(82) 목사다. 민 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기증 이유를 묻자 “내가 더 이상 갖고 있을 의미가 없으니 내놓게 된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모은 성경책들을 내놓게 됐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선교사들이 잘 활용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이스라엘 히브리대 대학원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민 목사는 국내 최고의 성경 번역가로 통한다. 감리교신학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실장, 부총무, 총무 등을 차례로 맡아 성경을 지구촌 곳곳에 보급하는 일에 매진했다. 저서로는 ‘현대인을 위한 구약성서’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성경 바로 읽기’ 등이 있다.

민 목사가 기증한 성경은 신·구약 합본 형태를 띤 책이 85권, 구약만 있거나 신약만 있는 책이 각각 6권, 19권이다. 언어별로는 모두 36종에 달한다. 전부 그가 대한성서공회에 재직하던 시절 갖고 있던 성서들이다. 민 목사는 “선교센터 센터장인 이상훈 목사가 성경책 기증을 요청해 기꺼운 마음으로 응하게 됐다”며 “해외 선교를 꿈꾸는 이들이 각기 다른 선교지 언어로 쓰인 성경책을 보면서 언어도 익히고 선교에 대한 의지도 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0년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 목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성경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평생 성경책 하나에 매달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독서를 한 것은 오직 그 한 권의 책, 성경을 읽기 위해서였다.”

12년이 흐른 지금, 그는 성경에 담긴 뜻을 얼마나 이해하게 됐을까.

민 목사는 “번역에만 몰두하느라 성경은 여전히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성경은 신앙의 기본”이라고 강조한 뒤 “말씀대로 살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희망을 찾게 만드는 것이 성경이 갖는 가치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