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이준희(36)씨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홀로 출근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지적장애 3급인 준희씨가 혼자 자취를 시작한 건 두 달이 되지 않는다. 아들의 곁을 평생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한 준희씨 부모가 결단을 내렸다. 서툴겠지만 홀로서기를 시켜보기로.
준희씨의 아침은 여느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샤워로 일과를 시작한다. 어머니가 가져다준 반찬과 전날 손수 만든 밥을 꺼내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야무지게 설거지까지 마치면 출근 준비가 마무리된다. 집이 있는 태릉에서 해맑음보호작업시설이 있는 공릉동까지는 채 2km가 되지 않는다. 날씨가 좋으면 걷고 날씨가 궂거나 시간이 여유롭지 않을 때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걱정과 달리 지하철에서 헤매거나 내리는 곳을 지나치진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부모가 뒤에서 몰래 따라가며 아들을 지켜봤다. 준희씨 어머니 송교연(59)씨는 “부모가 건강할 때 혼자 사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밥하는 법, 대중교통 이용하는 법 등을 천천히 가르쳤다”고 했다.
지적장애인 모두가 자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적장애인 대부분은 평생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2020년 시행된 탈시설화 정책에 따라 장애인의 자립이 강요되고 있다. 장애인 인권보장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전문가와 돌보미 등 인력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 제대로 된 인프라 구축 없이 무리하게 시행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의 돌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된다. 최근 가족에 의한 장애인 살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가족에게 돌봄을 온전히 떠넘긴 결과다. 정부의 섣부른 탈시설화가 장애인을 죽음이냐 자립이냐의 선택으로 떠밀고 있다.
최민량 해맑음보호작업시설 원장은 “부모들에게 제발 우리 친구들이랑 같이 죽을 생각 말고 혼자 먼저 죽으시라고 말한다”며 뼈 있는 농담을 한다. 그는 “자립할 수 있는 우리 친구들은 저희와 부모가 함께 노력해 돕는다”며 “반면 자립이 어려운 우리 친구들은 시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글=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