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유튜브 화질도 나빠지는 거 아냐?”
미국 아마존이 운영하는 게임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지난달 30일 한국 내 서비스 영상 화질을 1080픽셀(풀HD)에서 720픽셀(HD)로 한 단계 낮추자 온라인에선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우려가 쏟아졌다. 트위치는 화질을 낮춘 이유로 ‘한국 내 서비스 운영 비용 상승’을 언급했다. 사실상 망 사용료 부담이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현재 국회에는 구글(유튜브), 넷플릭스 등 콘텐츠 제공업체(CP)와 관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망 사용료 의무화법)이 발의돼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넷플릭스, 유튜브가 국내 통신사업자(ISP)들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 이는 트위치 사례처럼 비용 증가와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통신사에 대한 비판 여론도 감지된다. 통신 3사가 합산 영업이익 4조원(2021년 기준)대를 올리는 상황에서 이용자 불편을 부를지 모를 망 사용료를 고집한다는 시각이다. 일부 누리꾼은 ‘과거 피처폰 시절 벨 소리 (다운)받는데 데이터요금만 2만원 나왔다’는 기억까지 소환하며 통신사들이 소비자 편익보다 자사 이익만 추구한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반면 통신사들 입장은 단호하다. 네트워크망에 통신사가 투자했으니 사용료를 받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서비스 CP 중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 건 구글과 넷플릭스뿐이다. 구글은 국내 전체 트래픽 양의 27.1%, 넷플릭스는 7.2%를 차지(2021년 10월~12월 기준)한다.
‘망 사용료 대전’은 유튜브가 지난달 망 사용료 반대 서명 운동에 나서 달라고 국내 유튜버들을 독려하면서 본격화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법 개정이 이뤄지면 한국 사업 운영 방식 변경을 고려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온라인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트위터에 “망 사용료 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적었다. 소관 상임위원장인 정청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도 “국내 통신사를 보호하려다 국내 CP ‘폭망’을 불러올 수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법안 표류 조짐에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지난 12일 ‘망 무임승차 글로벌 빅테크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망 사용료 문제는 CP들과 통신사 간 해묵은 논쟁이다. 넷플릭스, 유튜브는 왜 다른 CP들은 내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겠다고 할까. 핵심을 알려면 ‘캐시서버’(본사 서버 데이터를 복사한 서버)라는 다소 복잡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네이버 등 국내 CP들은 일반 이용자처럼 인터넷망 연결 요금을 낸다. 네이버는 2016년 734억원의 망 사용료를 지불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넷플릭스도 미국에서 망을 연결하면 현지 통신사에 요금을 낸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해외 서비스를 위해 일본 등 지역에 캐시서버를 설치했다. 미국-일본 구간 자체 해저케이블을 써서 콘텐츠를 복사해 캐시서버로 옮긴 것이다. 통신사를 거치지 않아 별도 요금은 없다. 해당 캐시서버는 SK브로드밴드(SKB) 망을 통해 국내 이용자들에게 연결된다.
SKB는 해당 캐시서버에 자사 망을 연결한 대가를 내라는 입장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직접 투자해 설치한 캐시서버를 오히려 무상 제공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SKB 망을 통해 전 세계 다른 네트워크에 접속하지 않기 때문에 망 사용료 지급 의무도 없다고 한다.
국내 법원은 이와 관련한 1심 민사 소송에서 SKB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SKB 망 연결에 대해 “넷플릭스가 대가 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데 양측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업성으로만 생각하면 캐시서버에 망 연결을 끊어야 하지만 국민 불편을 고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시장 실패’ 상황이라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국이 채택한 ‘발신자 종량제(상호접속고시)’가 문제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이는 통신 3사 간에 트래픽(데이터 이동)을 많이 발신한 통신사가 착신 측 통신사에 비용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2005년부터 도입됐다. CP 측은 해당 고시가 트래픽에 따른 망 사용료 부담을 늘렸다고 주장한다. 반면 통신사 측은 넷플릭스의 망 무임승차와 해당 고시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반박한다.
이미 망 사용료를 내는 CP들도 요금 부담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망 사용료 법은 사용료를 강제해 더 큰 문제지만 법 통과가 안 되더라도 국내 CP들의 과도한 접속료는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로 많은 트래픽이 발생할수록 CP 비용 부담이 늘어나 국내 콘텐츠 시장 발전을 저해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면적이고 새로운 틀에서 해법을 찾으라는 조언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거대 CP가 비용을 망 사용료가 아닌 기금 형태로 조성해 취약지역 망 구축에 사용하는 등 대안도 논의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네트워크가 민영화된 상황에서 통신사가 망 사용료 등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배임이 될 수도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트래픽이 발생할 텐데 통신사와 CP가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지 큰 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