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6일 경기도의 한 신축 공장 설비공사 현장. 6m 높이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인부들이 밟고 있던 패널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인부 5명이 콘크리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고 현장에는 추락을 예방할 추락방호망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사고로 에어컨 설치 공사를 수주한 하도급 업체 대표를 비롯해 2명이 숨지고 3명은 전치 3~6개월의 상해를 입었다. 검찰은 공사를 도급 받아 이중 에어컨 설치 부문을 떼어 재하청을 준 도급업체 대표 A씨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하청·재하청 책임이 복잡하게 얽힌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10일 A씨의 유죄를 확정했다. A씨는 에어컨 설치 공사의 경우 전부 도급을 줬기 때문에 근로자를 지휘·감독할 위치에 않아 무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원청 회사에서 따낸 ‘기계제작 및 설치공사’ 중 일부인 에어컨 설치 공사를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산업재해 예방책임이 있는 ‘일부 도급 사업주’가 맞고,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일정을 조율할 지위에 있었기에 산재를 예방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사망한 이들은 사고 후 약 한 달이 지난 뒤 사망했기 때문에 사고와 죽음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는 항변도 했지만, 1심 재판부는 “납득할 수 없다”며 그의 주장을 배척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숨진 하도급 업체 대표 B씨가 고용한 근로자들에 대한 A씨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B씨와 그에게 재하청을 받아 공사에 참여했다가 부상 당한 전문 인부 C씨에 대해서는 A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 형량을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낮췄다. 두 사람을 고용된 근로자가 아닌 에어컨 설치공사를 의뢰받은 수급인으로 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도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잘못이 없다며 이 판결을 확정했다.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최정은 변호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경직되게 해석해 오히려 사업주들에게 면죄부를 주던 과거 사례에서 벗어나고 있는 법원의 최근 경향이 반영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