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빅스텝 딜레마’

입력 2022-10-10 04:06

기준금리 인상 폭을 놓고 한국은행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를 벌어지게 놔둘 수 없지만 가계와 자영업자 이자 부담에다 경기 침체 우려까지 고려해야 하는 탓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의에서 7월에 이어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0.25% 포인트씩 인상한다는 기조를 밝혔던 한은이 물가·환율 압박에 인상 폭을 키운다는 시나리오다. 올해 초만 해도 3%대에 머물던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6.3%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에도 5%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400원대로 진입한 원·달러 환율도 변동 폭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3.00~3.25%로, 이미 한국과 0.75% 격차를 낸 상태다. 한은이 오는 12일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더라도 여전히 미국 금리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미 연준이 11월, 12월 잇달아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을 밟는다면 미국의 금리 상단은 4.75%까지 올라간다. 이는 한국이 올해 남은 두 차례 금통위에서 모두 빅스텝을 밟더라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한국 시장의 투자 메리트가 떨어져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진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달 한 달 동안에만 2조1239억원을 순매도하며 증시 하락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한은으로선 자영업자와 가계의 대출 이자 급등이 부담스럽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준금리가 연 3%로만 높아져도 자영업자와 가계 부채 이자는 17조5263억원으로 급증한다. 게다가 이자 급등으로 인한 기업 자금 경색 문제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은 일단 오는 12일 0.5% 포인트 인상을 한 뒤 11월 금통위까지 국내외 경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달 채권시장 종사자 186개 기관 8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89%가 0.5% 포인트 인상, 6%가 0.75% 포인트 인상 등으로 이달 기준금리 인상 수준을 예상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채에 대한 민감도가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며 “부채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정책을 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