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6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결정으로 국민의힘은 ‘가처분 리스크’라는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됐다. 국민의힘은 ‘정진석·주호영 투톱’ 체제로 당 내홍을 수습하고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준비에 돌입할 전망이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 전 대표가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 6명에 대해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등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비대위 출범 관련 각 의결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모두 각하됐다. 1차 가처분 때 이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던 재판부가 3~5차 추가 가처분 사건(2차는 취하)에서는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의 판단 변화에는 당헌개정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앞서 법원은 8월 26일 1차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당의 비상상황 유권해석에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이에 국민의힘 전국위원회는 9월 5일 비대위 출범 요건이 되는 ‘비상상황’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비한 당헌개정안을 의결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종전에 해석에 여지가 있던 불확정 개념인 ‘비상상황’을 배제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요건을 정한 것”이라며 국민의힘의 당헌개정은 절차적·실체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바뀐 당헌에 따른 비상상황 의결 및 비대위 출범, 비대위원장·비대위원 임명 절차에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국민의힘은 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이제 집권 여당이 안정적인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윤석열정부의 성공을 튼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며 “지도부가 안정을 되찾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이 전 대표는 정진석 비대위 구성이 완료된 9월 13일자로 당대표직을 상실하게 됐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선례도 적고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얽힌 정당에 관한 가처분 재판을 맡아온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의기 있는 훌륭한 변호사들과 법리를 갖고 외롭게 그들과 다퉜고, 앞으로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지난 7월 7일 이 전 대표 징계 이후 지도부 체제 전환 과정에서 대혼란을 겪었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체제’와 ‘주호영 비대위 체제’는 각각 ‘내부총질 문자 유출’ 사건과 법원의 1차 가처분 인용으로 좌초됐다. 이후 정진석 비대위 역시 가처분 리스크를 제거하지 못한 채 불안하게 출범했다. 불과 석 달 만에 세 가지 형태의 지도부를 거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내 의원들 간 이견으로 내홍도 극심했다.
한 중진 의원은 “법원 결정으로 사안이 일단락된 만큼 당 지도부도, 이 전 대표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상황을 빠른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비대위가 가처분 리스크를 털어내면서 차기 전당대회 시점을 둘러싼 논의도 서서히 달아오를 전망이다. 한 재선 의원은 “국정감사가 끝나고 예산안 심사까지 끝나면 당내 분위기가 자연스레 전당대회 국면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손재호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