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우가 말하는 ‘위기의 X’… “인생에 가속과 감속이 필요하다”

입력 2022-10-08 04:09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에서 배우들이 극 중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장면. ‘위기의 X’는 중년에 온갖 위기를 다 마주한 ‘a저씨’ 윤대욱의 짠내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윤대욱을 연기한 배우 권상우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웨이브 제공

‘만년 차장’에서 이제 부장이 되나 했더니 회사에서 잘렸다. 40대에 백수가 됐는데 주식 투자에도 실패했다. 재취업을 위해 면접장에서 눈 질끈 감고 ‘카운팅 스타’까지 불렀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는 중년에 온갖 위기를 다 마주한 ‘a저씨’ 윤대욱의 짠내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제목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을 법한 모든 경우의 위기를 6부작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다. 주인공은 40대 중년 가장이지만 전 세대를 아울러 공감할 수 있는 주거, 직장, 가정의 문제를 녹였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다’며 괴로워하는 대욱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윤대욱을 연기한 배우 권상우는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도 코미디였다. 20년이 지나도 그의 코미디는 통한 셈이다. 그는 지난 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데뷔 이후 연기가 가장 많이 늘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내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가장 재밌는 얘기였던 것 같다. ‘권상우표 코미디’라고 해줘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기에 스타 배우 권상우와 직장인 윤대욱의 인생은 많이 달라 보인다. 하지만 권상우는 배우로서 맞는 위기도 직장인 못지않게 많다고 했다. “어떻게 말하면 (대욱에게) 공감 못 할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배우 권상우는 청약을 안 해도 되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니까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다른 문제더라고요. 배우도 작품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위기감이 회사에서 잘릴까봐 걱정하는 감정과 똑같아요. 어떻게 보면 일반 직장인보다 더 위기의 순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공감했고, ‘아저씨’ 역할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어요.”

권상우

그가 대욱에게 가장 공감했던 순간은 직장 동료가 떠난다고 했을 때 집으로 가면서 ‘아내가 너무 보고 싶다’라고 한 장면이었다. 권상우는 “살면서 내가 힘들 때 무작정 엄마나 아내가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웃기지만 결코 웃긴 이야기만이 아닌 걸 정리해주는 대사여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배우로서 위기의 순간은 “작품을 할 때마다”라고 했다. “매번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한두 작품 잘돼도 지금 당장 공개하는 작품이 잘 안 되면 비난이 쏟아지잖아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중심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잖아요. 그런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도 하죠.”

겨우 재취업에 성공해도 대욱의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노하우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회사를 이끌어가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건 대욱의 몫이었다. 그런 그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 미진이었다. 남편이 실직해도, 주식으로 5000만원을 잃어도 미진은 그를 미워하기보다 짠하게 여긴다. 한껏 풀죽은 남편을 북돋아 준다.

미진역의 배우 임세미는 “(미진은) 아내의 표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만약 결혼을 하면 남편에게 이렇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따뜻한 역할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도 대욱이 짠해서 울컥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아내 모르게 주식 걱정, 청약 걱정을 하면서 많은 순간에 혼자 있더라고요. ‘아저씨들은 이런 사람이 많은 건가’하는 생각에 보는 분들이 위로받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세미

미진이 현실적인 아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판타지적인 아내의 모습에 가깝다. 임세미는 어딘가는 이런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다고 했다. “미진이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을 북돋아 주려고 했던 장면이 기억나요. ‘계속 가다 보면 오빠는 발만 뻗으면 (토끼를) 따라잡는다’고 말하는데 남편이 혼자 피식하면서 좋아하는 장면이요.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연기했어요.”

코미디 외에도 액션,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거쳤지만 권상우에겐 코미디에 대한 애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대본에 안 보이는 부분을 표현했을 때 좋은 반응이 오면 거기서 오는 희열이 크다”며 “나는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했다. ‘위기의 X’는 그에게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저에게 자신감과 즐거움 한꺼번에 준 작품이에요. 열심히 연기하고 보여주면 언젠간 시청자가 알아주는 순간이 온다는 순리를 알게 된 현장이었어요.”

대욱은 마지막 회에서 인생에 가속과 감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우 권상우도 마찬가지였다. 권상우는 “가속과 감속을 조절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가속이란 좋은 작품을 만나서 연기를 잘해나가는 것. 반대로 감속은 꼭 멋있는 주인공 역할이 아니라도 지금 시기에 맞는 역할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배우와 시청자 모두 시즌2에 대한 염원이 크다. 권상우는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기 때문에 시즌2는 10부작 정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배우가 ‘위기의 X’로 느낀 것,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했다. 임세미는 이번이 첫 코미디 연기였다. 그는 “코미디라고 해서 장르가 코미디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웃기려고 과장을 하면 안 됐다. 누군가는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를 최대한 충실하게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저런 사람이 진짜 있어’라며 웃기면서도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게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권상우는 영화 제작사를 차렸다. 내년에 작품을 제작해서 향후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코미디라는 건 따뜻함이 있어야 하고 우리를 뒤돌아보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슬픔도 있다”며 “그런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