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전담요원 몰라요, 채팅방이나 검색해 정보 얻죠”

입력 2022-10-06 00:02
내년 2월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 이어진씨가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한 주민센터에서 전세임대주택 신청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은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이어진(20)씨가 홀로서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날이다. 이씨는 이날 오후 2시쯤 경기도 고양시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에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한 서류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보냈다. 전문대학 입학 후 기숙사에서 지내는 이씨는 내년 2월 졸업과 함께 자립을 준비 중이다. 국민일보는 이씨의 자립 준비 과정에 동행해 자립준비청년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들여다봤다.

이씨는 이날 서류 몇 장을 떼고 간단한 설명을 들으면 일이 끝날 것으로 봤지만 담당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됐다. 직원들이 애를 먹은 건 우선 일반 청년 주거지원 사업과 자립준비청년 지원 사업을 헷갈린 탓이다. 재차 다시 설명했음에도 담당자는 이씨에게 소년소녀가정용 전세주택지원 신청서류를 인쇄해 건네줬다. 소년소녀가정과 자립준비청년이 다르다는 점을 몇 차례나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 혼란은 평소 그가 접하는 현실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룹홈 시설장과 보육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씨는 자립 준비를 자립전담요원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했다. 규모가 비교적 큰 아동양육시설은 자립전담요원이 일부 배치돼 소속 아동을 지원하지만, 이씨처럼 소규모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이씨가 관련 정보를 얻는 곳은 주로 그룹홈 출신 ‘자립 선배들’과 자립준비청년 오픈채팅방이다. 이씨는 그룹홈협의회가 주최한 캠프에서 강연자로 만난 선배 연락처를 물어 도움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자립준비청년과 시설 관계자 570여명이 참석해 있는 오픈채팅방도 알게 됐다. 채팅방에선 사회에 나가기 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자립 후 우선 무슨 일부터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주변에 물어볼 어른이 없는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이 시행착오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채팅방에선 사적 대화는 없지만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복지 서비스나 장학금 혜택 등의 정보도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이씨는 “선배들이나 채팅방에서 정보를 얻고, 그렇게 해결이 안 되면 검색엔진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자립 준비 의지가 강하면 시스템의 부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 이에 비해 별다른 대비 없이 자립 준비를 시작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이씨를 돌봐 온 이시은 시설장은 “어진이처럼 스스로 의욕을 갖고 정보를 알아본 경우는 한결 낫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자립 과정에서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특히 퇴소 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경우 혼란이 가중된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서류를 작성해서 주민등록등본, 퇴소예정자 증명서류 등과 함께 다시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이후 GH가 심사에 들어간다. 심사 통과 시 이씨는 최대 1억2000만원의 임대보증금을 지원받아 전세임대주택을 구할 수 있다.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은 낮지만 머물 집은 이씨가 직접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며 매물을 알아봐야 한다. 아직 학생인 이씨 입장에선 쉽지 않은 과정이다. 차량정비 분야를 전공하는 이씨는 홀로 보증금 시세와 입주 시기가 맞는 곳을 구하고, 그에 맞춰 일자리도 구해야 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처음 접하는 홀로서기 과정이다 보니 물어볼 것도, 궁금할 것도 가장 많은 상황인데 이 궁금증을 비공식적인 경로로만 해결할 수 있어 아이들도 참 답답할 것”이라며 “아이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들을 지원하는 인력에 대해서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혼자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앞으로도 수두룩하지만 그나마 이씨는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는 편이다.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경우 자립준비청년에게 월 35만원씩의 자립수당 외에도 1500만원의 자립정착금을 지급한다. 반면 이런 지원이 부족한 지역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지방자치단체별로 자립준비청년에게 1인당 800만원 이상의 자립정착금을 지급하도록 권고했으나 부산과 제주, 충북 등 일부 지자체는 이에 못 미치는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지방 이양 사업이다 보니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나 지자체장의 의지 정도에 따라 지원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시설장은 “이씨는 굉장히 잘 풀린 경우”라고 했다.

주거지원 및 각종 세부지원 정책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서울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매입형 임대주택 지원 사업에 더해 이사비용 지원 사업도 실시하고, 대학 진학 시 입학금에 반기별 교재비도 지원한다. 연간 120만원의 취업준비금도 추가된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 지역은 이사비용은커녕 학비 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씨는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면서도 “어느 지역에서 지내는지에 따라 대접이 천차만별이니 저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김주하 보호종료아동을위한커뮤니티케어센터 국장은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지자체별로 지원에 편차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준비 과정부터 자립 교육이 잘 이뤄져 제대로 된 저력을 갖춰야 청년들이 보호종료 2~3년 뒤 정말 혼자 힘으로 서야 할 때를 맞아도 문제없이 돌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