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나 가수보다 연평균 소득이 높은 보험왕.’
국세청의 2012년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당시 보험설계사의 평균 소득은 5240만원으로 집계됐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보험왕’ 타이틀을 거머쥔 보험설계사들이 등장했던 때였다. 일부 보험설계사는 연예인보다 평균 소득이 높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러나 최근 쉽게 접했던 보험설계사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영업’이 대세를 이룬 데다 보험사 전속 보험설계사들 위주의 상품 판매 구조가 크게 변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온라인 보험 상품 판매가 더 늘어나면서 보험설계사 감소세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속설계사 10년간 28.5% 감소
7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생명보험사 및 손해보험사 전속 보험설계사 수는 2012년 12월 말 23만160명에서 올해 6월 말 16만4647명으로 6만5513명 감소했다. 10년 사이 28.5% 급감한 것이다. 과거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보험설계사를 지원하며 출혈경쟁을 서슴지 않던 때와 비교하면 급격한 변화다. 전속은 보험사 1곳에 소속돼 해당 회사의 상품만 파는 보험설계사를 가리킨다.
전속 보험설계사 수 감소에는 여러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19년 12월 말 17만9000여명이었다가 2020년 말 19만2000여명으로 증가했다. 증가세가 꺾인 건 2021년 상반기 때였다. 2021년 말 17만명대로 떨어진 이후 올해 16만명대로 더 내려갔다. 코로나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보험설계사 수가 감소한 셈이다. 대면 영업이 중요한데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보험설계사들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코로나 유행기를 거치면서 ‘보험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설계사들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보험연구원의 ‘설계사 소득하락 원인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생보사 및 손보사 전속 보험설계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323만원, 256만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생보사와 손보사 전속 보험설계사의 월평균 소득은 연평균 각각 2.0%, 7.6% 하락했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보험설계사의 소득 분포는 저소득자와 고소득자 비중이 모두 높은 ‘U자 형태’인데 최근 2년 동안 저소득자의 비중이 늘고 고소득자 비중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 감소세는 생보사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0년 말 9만명에 육박했던 생보사 전속 보험설계사 수는 2021년 6월 말 코로나 등 여파로 6만5000여명으로 급감한 뒤 올해 6월 말 기준 6만2000명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감소 폭이 손보사 전속 보험설계사에 비해 가파르다. 손보사의 경우 같은 기간 10만명대를 유지했다. 보험업계에선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생명보험 가입 수요 자체가 크게 줄어든 탓이라고 보고 있다. 생보사 주요 상품인 종신보험이나 연금보험, 변액보험 상품 등의 인기가 시들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속 보험설계사 감소의 근본 원인은 우후죽순 늘어난 법인대리점(GA)으로 지목된다. GA는 보험사 1곳의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복수의 보험사 상품을 판매한다. 여러 보험사와 계약을 맺어 보험상품을 비교·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형 보험사들이 보험상품을 만드는 업무와 이를 판매하는 업무를 분리하는 ‘제판 분리’ 현상 가속화가 GA 수를 늘렸다. 이에 따라 보험사 전속 보험설계사들이 자회사형 GA로 대거 이동하게 됐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금감원의 보험 모집조직 현황을 보면 보험사 전속 보험설계사는 27.2%에 불과했다. 반면 GA는 39.6%로, 보험설계사 10명 중 4명꼴이었다. 2017년 대비 보험사 전속 설계사는 8.8% 감소한 반면 GA 설계사는 13.7% 증가했다.
얼마나 더 감소할까
가입 조건과 상품 설계 자체가 복잡한 보험상품 특성상 보험설계사들의 대면 영업이 당장 사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제로 지난해 생보사의 상품·판매 방식별 신규계약 건수 통계를 보면 보장성·저축성 보험 상품의 경우 대면 방식이 각각 85.3%, 87.5%로 높았다. 변액보험 상품은 대면 방식이 99.6%에 달했다. 카드 발급 채널이 온라인으로 급변하면서 카드 모집인이 대폭 감소한 카드업계와 달리 보험업계에선 여전히 적지 않은 대면 상담 수요가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험설계사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비교적 설계 구조나 보장 범위 등이 복잡하지 않은 보험상품의 경우 이미 온라인이나 전화 상품 구매가 늘고 있다. 지난해 생보사의 보장성보험 상품은 전화를 통한 판매(TM) 비중이 11.9%로 나타났다. 저축성보험 상품은 온라인을 통한 판매(CM) 비중이 11.4%였다.
비대면 보험 상품 시장은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네이버 등 빅테크업체 플랫폼에서 보험상품을 중개·판매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여러 보험상품을 비교·구매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되는 것이다. 다만 최근 보험대리점 업계에선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결의대회’를 여는 등 빅테크의 보험업 진출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정식 도입 시점은 불투명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설계사 수 감소는 생보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판매 조직을 분리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장기적으로는 비대면 판매 비중이 늘 수밖에 없어 설계사 수는 감소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