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가계, 정부 모두 ‘돈줄’이 마르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커지며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킹 달러’ 현상에 따른 환율 급등으로 수출과 외환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정부도 돈을 풀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경제3주체 모두 신용경색 조짐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가 ‘신용 경색→소비 위축→생산 감소’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서울 신사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장모(65)씨는 최근 시름이 깊다. 코로나19로 손님이 급감하며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지난 3년여간 대출을 무리하게 늘렸지만 남은 건 3억원의 빚뿐이다.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에까지 대출을 받은 탓에 더 이상 돈을 융통할 곳도 없다. 장씨와 같은 다중채무자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6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는 41만4964명(12.8%), 대출액만 195조원에 달한다. 기업 자금시장도 얼고 있다. 지난달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총액은 5조3438억원으로 집계돼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초(8조7709억원)와 비교하면 규모가 39.1% 급감했다. 회사채는 기업이 투자·영업·연구 등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최근 운용자금으로 빌린 10억원에 대한 만기가 도래하자 시중은행이 더 높은 금리를 내거나 상환하도록 요구했다”며 “비가 오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작은 기업들에 우산을 씌워주기는커녕 뺏기 바쁘다”고 한탄했다.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서 회사채 금리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미 AA-등급의 회사채 3년물 금리가 연 5%대를 넘어섰다. 기업의 자금확보 부담이 커지고, 부실 위험을 감지한 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대주지 않으려는 악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경기 둔화로 기업 가동률 등 실적이 떨어지며 투자자들이 자금조달을 꺼리고 있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조차 자금조달 실패를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정부가 가계와 기업의 신용경색을 풀어주기 위해 돈을 풀며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도 긴축재정에 들어선 상태라 이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줄어드는 외환보유고를 걱정할 판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한계기업이나 취약계층을 시작으로 대규모 신용경색 현상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지훈 임송수 기자 germany@kmib.co.kr